우리에게도 '비틀', '골프'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 폴크스바겐(Volkswagen, 독일어로 국민차라는 뜻)은 1937년 자동차를 대중적 운송 수단으로 만들고자 했던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당시에는 불모지와 다름 없었던 볼프스부르크에 첫 공장이 세워졌다. 첫 시제품의 설계를 맡은 포르쉐 박사는 이 미치광이의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외형이 흡사 딱정벌레를 연상케하는 전 세계적인 히트 상품 '캐퍼'(비틀의 독일식 명칭)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60년대까지만 해도 값싼 가격으로 시장에서 승부했던 폴크스바겐은 전 세계적으로 판매 호조를 보인 이 딱정벌레 덕분에 어느새 연간 52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유럽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 거듭났다.
이 딱정벌레는 '뉴 비틀'이 출시된지 한참이 지난 지금이야 '귀엽다'라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도 여성팬들의 사랑을 듬뿍받고 있지만, 사실 초창기 비틀의 디자인과 사양은 적어도 필자의 관점에서는 고급스러움과 거리가 멀어보인다. 볼프스부르크의 15만 공장 노동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그들의 축구팀 VfL 볼프스부르크 역시, 분데스리가에서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봤을 때 분명 비틀과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운 팀은 아니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100여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타 클럽과는 달리 1945년 창단해 그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볼프스부르크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타이틀도 없고 팀이 배출한 대표적인 스타도 없다.
이러한 전형적인 '아웃사이더' 볼프스부르크가 필자를 비롯한 분데스리가 팬들에게 가장 강력한 인상을 심어준 시기가 바로 04/05 시즌 초반이었다. 볼프스부르크는 2003년, 팀 전력 강화와 유망주 수급의 원활함을 꿰하기 위해 남미의 대표적인 클럽 리베르 플라테와 전략적 제휴를 맺는다. 이 파트너쉽은 폴크스바겐이 리베르 플라테의 스폰서를 맡아 재정적 지원을 하는 대가로 리베르 플라테는 그들의 유망 선수들을 볼프스부르크로 추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말만 전략적 제휴지 실상은 리베르 플라테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이 거대한 딜은 모기업 폴크스바겐의 어마어마한 재정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리고 '시범 케이스'로 독일 무대를 밟은 선수가 바로 아르헨티나의 걸출한 재능 알렉산드로 달레산드로와 후안 카를로스 멘세게즈였다.
특히 달레산드로는 당시 아르헨티나 언론이 항상 떠드는 '제 2의 마라도나'에 근접한 초유망주였다. 작은 체구때문에 "거친 분데스리가에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일말의 의문부호에도 불구하고 달레산드로의 축구 재능은 볼프스부르크를 넘어 분데스리가 전체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유연한 드리블링과 화려한 개인기, 그리고 강력한 킥력과 정교한 패싱력을 동시에 겸비한 그의 능력을 차치하더라도 달레산드로는 전술적 틀에 묶여 움직이기 보다는 자유분방한 남미 축구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는 독보적 캐릭터였다. 이는 브라질 출신의 뛰어난 테크니션인 링콘도, 유럽 최고의 재능이라는 토마스 로시츠키도 결코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는 마치 브라질 해변의 뒷골목에서 공을 차는 듯한 인상을 풍겼으며 어쩌면 독일팬들에게 실로 오래간만에 승부와는 관계 없는 축구 본래의 즐거움을 선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미 선수를 주축이 된 볼프스부르크는 "VfL 사우스아메리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화끈한 공격 축구를 구사하며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야전사령관' 달레산드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패스워크와 화려한 개인기, 그리고 마르틴 페트로프 - 디에고 클리모비츠 - 토마스 브르다리치로 이어지는 결정력 높은 공격진은 1골 먹어도 2골 넣으면 된다는 식으로 상대 수비진을 초토화 시켰다. 또한 팀의 고질병으로 지적되어왔던 수비진 보강을 위해 케빈 호플란트와 파쿤도 퀴로가를 동시에 영입하며 '큰 손'임을 확인시켰던 볼프스부르크는 5라운드부터 8주 동안이나 중간 성적 1위를 기록하며 전문가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그들은 마치 그들의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을법한 포르쉐를 타고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것 같았다.
물론 후반기 들어 성적이 곤두박질치며 최종 순위는 9위에 머물렀지만 볼프스부르크의 축구는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또한 중소클럽답지 않은 적극적인 투자와 이에 따라 폴크스바겐 아레나로 입성하는 선수들의 면면은 볼프스부르크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높이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볼프스부르크는 2년 연속 15위를 기록하며 간신히 강등을 면하는 수준에 그쳤다. 분명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전력과 15위는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었다.
역시 이러한 부진의 가장 큰 이유는 달레산드로와 볼프스부르크와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다는 데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볼프스부르크라는 팀 자체가 달레산드로라는 자유로운 영혼을 품을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다. 같은 공격 축구라고는 하지만 독일식 공격 축구와 남미식 공격 축구와의 스타일 차이는 때때로 달레산드로의 역할을 애매모호하게 만들었다. 위르겐 뢰버, 에릭 게레츠, 홀거 파흐 등 달레산드로를 휘하에 뒀던 지도자들은 달레산드로가 팀의 중심이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그 재능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제각각 달랐고 이 과정에서 달레산드로의 개성은 말살되어갔다. 그들은 포르쉐를 가지고 있었지만 마치 그 좋은 자동차를 어떻게 운전하는지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은 바가 없어 보였다.
이 와중에 달레산드로가 당한 크고 작은 부상은 팀이 달레산드로에 100% 확신을 가지는 것을 방해했다. 어쩌면 달레산드로의 비상을 막은 것은 이 자그만한 체구의 소유자를 막기 위해 거친 몸싸움과 태클을 불사했던 상대 수비수가 아닌, 그를 기존의 전술적 틀에 끼워넣기위해 애썼던 볼프스부르크 그들 스스로였던 것이다.
특히 05/06 시즌 중반 홀거 파흐를 대신해 볼프스부르크의 사령탑을 잡은 클라우스 아우겐탈러와의 부조화는 결정적이었다.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대표팀의 레전드 수비수 출신인 아우겐탈러는 뉘른베르크와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지도자 생활을 보낸 바 있었으나 전술적 스타일은 볼프스부르크와 100%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우겐탈러가 수비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적어도 남미 선수들의 '개인기 쇼'를 느긋하게 봐주는 유형의 감독도 아니었다.
아우겐탈러는 쳐져있는 팀 성적을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조직력의 정비가 우선이라고 봤고 느슨해져 있던 전술적 틀을 새로 짰다. 수비수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미드필더들에게는 적극적인 수비적 임무를 부여해 팀의 안정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팀의 색채를 개편한 것이다. 아우겐탈러의 이러한 전략은 팀 수비력의 향상을 불러오는 순기능과 함께 예전과 같이 '프리롤'을 원했던 달레산드로와의 필연적인 갈등을 생산했다. 그리고 그 후 달레산드로는 아우겐탈러의 계획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
결국 달레산드로는 포츠머스와 레알 사라고사로의 장기 임대를 선택했고 리더를 잃은 볼프스부르크는 휘청거리기에 이른다. 여기에다가 볼프스부르크의 공격 축구를 담보했던 든든한 수비형 미드필더 듀오 미로슬라프 카르한과 파블로 티암의 부진까지 겹치며 팀은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볼프스부르크의 올시즌 실패 이유를 팀과 아우겐탈러의 궁합이 맞지 않았던 것에서 찾는다. 선수들은 여전히 공격 축구를 구사하던 그 당시의 시스템에 맞춰져 있었으나 감독은 선수들과 다른 지향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군다나 팀의 구심점이었던 달레산드로의 대안을 찾지 못했던 볼프스부르크는 마치 '수영장에 스키파카를 입고 입장하는 듯' 제 색깔을 찾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졌다. 고심끝에 선택한 브라질 출신 플레이메이커 마르셀링요의 영입은 결국 아우겐탈러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것과 다름 없는 것이었다.
결국 아우겐탈러에 대한 인내심을 잃어버린 볼프스부르크는 그를 경질하고 펠릭스 마가트 전 바이에른 뮌헨 감독을 불러들였다. 슈투트가르트 시절 극찬받아왔던 팀 조련 능력에도 불구하고 바이에른과 같은 '큰 클럽'에서는 어느 정도의 한계를 뚜렷하게 드러내기도 했던 마가트가 다시 한 번 중소 클럽에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기회를 잡은 것이다. 바이에른 뮌헨 감독직에서 경질된 이후 해외 무대로의 진출을 원해왔던 마가트가 볼프스부르크의 지휘봉을 잡은 이유로는 아마도 자신의 축구 철학을 이 중소 클럽이 뒷받침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폴크스바겐으로부터 연간 2,000만 유로 상당의 지원을 받고 있는 볼프스부르크의 재정력과 기존 선수들의 이탈로 인해 새로운 피의 수혈이 필요했던 당시 정황은 마가트의 도전 의식을 건드리기 충분했다.
볼프스부르크는 마가트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기 전 이미 마이크 한케와 디에고 클리모비츠라는 주전 스트라이커들을 각각 하노버와 도르트문트로 이적시키며 일찌감치 팀 개편에 착수했다. 레알 사라고사로의 임대 이후 물 만난 고기처럼 제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달레산드로도 300만 유로에 완전 이적을 결정하며 미련을 끊었다. 그리고 지난 시즌 코트부스 전력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루마니아 듀오' 세르지우 라두(FW)와 블라드 문테아누(MF)를 500만 유로에 패키지로 구매했다. 이는 단순히 팀 공격을 이끌 돌격대장을 교체하는 것이 아닌, 팀의 전체적인 색채를 개편하는 작업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과연 달레산드로의 입성 이후 계속되어 왔던 볼프스부르크의 공격적 색채는 바뀌는 것일까? 어쩌면 그 해답은 공격적 색채보다는 안정적인 게임 운영을 중시하는 마가트의 부임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바이에른 시절 팬들로부터 재미없는 축구라는 혹평을 받았던 마가트지만 중위권 팀의 성적 향상에는 확실히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슈투트가르트 시절 그의 축구 스타일은 철저한 실리 위주의 축구였으며 이는 팬들의 즐거움을 떠나 팀에게 성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여전히 공격적 색채를 가진 선수들이 많은 볼프스부르크가 마가트를 선택한 것을 두고 의아심을 가지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물론 마가트 본인이 아우겐탈러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팀에 맞는 새로운 전술을 구축할 가능성도 있으나 이도 '실리'라는 측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 틀림 없다.
마가트의 의중은 그가 볼프스부르크의 감독 겸 매니저로 부임한 이후 영입한 선수들, 그리고 앞으로 영입될 선수들의 면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마가트의 첫 사이닝은 50만 유로를 들인 1860 뮌헨의 공격형 미드필더 다니엘 바이어였다. 바이어는 지난 시즌 2부 리그 34경기에 모두 나서 2골과 10개의 어시스트라는 수준급 포인트를 기록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마르셀링요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볼프스부르크의 공격 루트를 다변화 시킬 수 있는 선수로 기대된다. 두 번째 사이닝은 역시 2부 리그 SC 프라이부르크의 수비형 미드필더 샤샤 리터였다. 유스 시절 독일 U-21팀의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리터는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전투적인 기질을 선보이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팀을 떠나기로 결정한 베테랑 미로슬라프 카르한의 대체자로 간주된다.
그 후 마가트는 장신 스트라이커 에딘 제코와 포르투의 중앙 수비수 히카르도 코스타를 영입하는 데 도합 650만 유로를 투자했다. 제코는 192cm의 장신 스트라이커로 팀을 떠난 클리모비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선수이며, 지난 시즌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마가트가 400만 유로를 배팅한 코스타는 케빈 호플란트가 떠난 수비진의 리더 역할을 해줄 선수로 기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번 여름 내내 목을 매달았던 알렉산더 라스와 크리스티안 겐트너의 영입에도 성공하며 자신의 구상을 차근차근 실현해 나가는 모습이다. 이처럼 최근 볼프스부르크의 영입 선수들은 모두 기존 스쿼드의 선수들과 비교해 마가트의 입맛에 딱 떨어지는 선수들로 마가트 중심의 팀 스타일 변화를 어렴풋이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선수 영입에 있어 팀의 전권을 휘두르고 있는 마가트를 생각해 볼 때,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공산이 크다.
미끈하게 잘 빠지고 역동적인 멋이 있었던 그들의 '포르쉐 축구'는 달레산드로와의 인연이 끊어지면서 폴크스바겐 아레나의 기억에서도 지워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을 바라볼 때 마가트는 멋은 없더라도 안정적이고 투박한 폴크스바겐으로 차를 갈아타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다. 하지만 그것이 볼프스부르크라는 팀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볼프스부르크는 승리와 승점이라는 측면에서 팬들의 기대치를 채워줄 수 있는 팀으로 거듭나고 있는지 모른다.
팀 스타일의 정립이라는 것은 말처럼 쉬운 작업은 아니다. 21세기 들어 분데스리가를 주도하고 있는 베르더 브레멘 역시 토마스 샤프 감독의 지도 하에 팀에 맞는 색깔을 찾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과연 펠릭스 마가트가 단시간 내에 말 많았던 볼프스부르크를 조련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클럽의 사활이 걸린 이러한 변신이 성공적으로 귀결된다면, 볼프스부르크는 달레산드로 없이도 당당히 분데스리가라는 아우토반을 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포르쉐가 아닌, 폴크스바겐을 타고 말이다.
- 사커라인 김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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