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꼴 복귀, 닮은꼴 고민

히츠펠트와 다움은 전술적인 측면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히츠펠트는 미드필더와 수비를 중시하고 중원에서의 두터운 압박을 바탕으로 한 프레싱에 능하다. 그리고 상대 공간을 천천히 잠식해가며 숨통을 조이고 확률 높은 득점원을 통해 승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골을 얻어낸다. 반면 다움은 화끈한 돌격형이다. 중원에서 경기를 조율하며 볼 점유율을 높이는 것보다는, 좌우 측면의 날개들을 이용해 상대 수비진을 정신없이 흔들고 중앙에서는 적극적인 공격 가담으로 숫적 우위를 점한다. 즉,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선수들이 모두 공격적인 마인드로 경기에 임하는 것이 다움 축구의 골자다. 히츠펠트가 1골 넣고 실점을 안하려는 축구라면, 다움의 축구는 1골을 실점하더라도 2골을 넣으면 된다는 식이다.

이러한 성향때문인지, 두 감독의 걸어온 길은 대조적이다. 간혹 '전술적 정체'를 지적받아온 히츠펠트지만, 그의 '이기는 축구'는 팀에게 확실하게 우승 트로피를 바쳐왔다. 반면 팬들에게는 최고의 축구로 사랑받은 다움이지만, 그의 팀은 막판 수비가 흔들리거나 공격진의 컨디션 난조때문에 항상 정상 근처에서 좌절해야했다. 이 때문에 히츠펠트가 항상 최고의 길을 걸어왔다면, 다움은 '2인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아무래도 안정을 원하는 정상권 팀들의 사랑을 받았던 히츠펠트와, 뭔가의 변화가 필요한 팀들에게 선택받았던 다움의 과거도 이에 한 몫을 거들련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의 올시즌 복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닮아있다. 우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랜 기간 독일 축구계와 떨어져 있었다는 과거가 닮았다. 또한 현재 이들이 처한 상황이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독일에서 최고의 전술적 식견을 가진 두 감독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바이에른과 쾰른의 상황은 그다지 호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성적면에서는 그렇다.

바이에른 뮌헨은 히츠펠트를 선임하면서 사실상 올시즌 우승 레이스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남은 경기가 많았기에 앞으로의 경기 결과에 따라서 산술적인 가능성은 존재했지만,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주어지는 '3위 이내'로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샬케와 브레멘, 그리고 그들의 남독 라아벌 슈투트가르트와 뉘른베르크까지 가세한 것으로 보이는 챔피언스리그 티켓 확보전은 바이에른에게 결코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실제로 히츠펠트는 그의 복귀전이었던 뉘른베르크와의 원정 경기에서 0:3으로 패배, 만만치 않은 현실을 온 몸으로 체감해야했다. 히츠펠트의 선임 이후, 바이에른은 리그에서 2승 2패를 기록하고 있고 원정 경기에서는 모두 패했다.

다움의 쾰른도 마찬가지다. 올시즌 2부 리그로 강등된 쾰른의 시즌 초 목표는 당연히 '승격'이었다. 다움을 전격 영입한 것도 중위권으로 쳐진 팀 성적의 만회를 통해 승격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임이 자명하다. 그러나 다움의 선임 이후에도 쾰른의 성적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으며 승격은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다. 복귀 후 9경기를 치른 다움은 정확히 3승 3무 3패를 기록중이며, 이는 쾰른이 기대했던 성적은 아닌게 사실이다. 물론 다움에게는 주전 선수들의 크고 작은 부상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존재하지만, 그러는 순간에도 팀의 성적은 10위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승격의 자격이 주어지는 3위 뒤스부르크에 승점 12점이 뒤쳐져있는 쾰른은, 더군다나 칼스루헤, 한자 로스톡, 뒤스부르크, 카이저스라우턴, 1860 뮌헨 등 상위권 팀들과는 모두 원정 경기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 보인다는 의견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우선 히츠펠트는 시즌 내내 전무하다시피 했던 바이에른의 '팀 스피리트'를 되살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후반전에 보여준 바이에른의 경기력은 순전히 정신력의 부활에 힘입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바이에른은 3:1이라는 전반전 스코어에 다소 '안도'하는 것으로 보였던 레알 마드리드를 적극적으로 몰아부쳤고, 결국 종료 직전 천금 같은 동점골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하프타임때 선수들에게 정신력을 강조했던 히츠펠트의 담금질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또한 기존 선수들에게 '새로운 발락'을 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전임 펠릭스 마가트와는 다르게, 그라운드에서 발락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워버린 것도 서서히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크 반 봄멜에게 중앙에서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 히츠펠트는, 안드레아스 괴를리츠, 하산 살리하미지치 등 날개들로부터 공격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또한 마가트 감독 하에서 들쭉날쭉한 플레잉타임과 그에 상응하는 경기력으로 비난을 받았던 루카스 포돌스키를 전폭적으로 신임함에 따라 공격력 배가를 노리고 있다. 실제로 포돌스키는 최근 리그 경기에서 히츠펠트의 신임에 보답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케 하고 있는 모습이다.

부상 선수들이 속속 스쿼드로 복귀하고 있는 다움도, 선수단 운용에 숨통이 틔임에 따라 자신의 축구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사실 쾰른은 그들의 베스트 11으로 경기에 나선 기억이 시즌 초반 몇 경기밖에 없을 정도로 선수단 전체가 부상에 시달렸던 팀. 하지만 요 근래 2부 리그 최고의 공격 재능이라고 평가 받는 파트릭 헬메스를 비롯, 수비와 미드필더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선수인 마어빈 마팁, 스위스 대표팀 출신으로 경험이 풍부한 미드필더 리카르도 카바나스 등이 부상에서 복귀함에 따라 활기를 띄고 있다.

다움은 1부 리그에서 짧은 기간 동안 잠재력을 인정받았던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완전히 개편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부실한 미드필드의 수비력 보강을 위해, 독일 대표팀에서 뛰기도 했었던 장신 수비수 루카스 진키비쉬를 미드필더로 끌어 올렸다. 또한 카바나스의 복귀는 미드필드에서 단순한 가용 인원의 증가가 아닌, 다움의 전술폭을 크게 넓혀주는 호재 중의 호재다. 골 가뭄에 시달렸던 쾰른의 공격진은, 시즌 초반 5경기에서 7골을 몰아쳤던 헬메스의 복귀로 중량감이 실렸다. 실제로 헬메스는 23라운드 파더본과의 경기에서 부상 복귀 이후 첫 풀타임을 소화했고 1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움의 쾰른에서, 헬메스와 백전 노장 마티아스 슈레츠, 정교한 패싱력을 소유한 토마스 브로이히 같은 인물들은 분명 중용이 가능한 스타일의 소유자이다. 성적 향상을 위해서는 이기는 경기가 절실히 필요한 쾰른의 입장에서, 다움의 스타일은 빠른 시간내에 지지를 얻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주목되는 앞으로의 행보

현재 처해있는 상황은 비슷하지만, 두 감독의 '차이'는 아마도 올시즌이 끝나고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히츠펠트는 바이에른과 반 시즌의 단기 계약을 맺었지만, 다움은 2010년까지의 여유있는 계약 기간을 보장받았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히츠펠트의 차후 행보다. 본인의 입으로 여러 차례 공언했듯이, 히츠펠트는 바이에른과 계약을 연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올시즌 바이에른이 히츠펠트에게 원했던 것을 모두 얻어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관계없이 히츠펠트의 빛나는 커리어에는 해가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는 여전히 유럽의 정상급 클럽에서 히츠펠트를 주시할 것이라는 이야기와 다름 아니다.

히츠펠트가 예정대로 올시즌까지만 바이에른을 맡는다는 가정하에(최근 히츠펠트는 바이에른과의 계약 연장에 대해 다소 긍정적으로 선회하는듯 하긴 하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히츠펠트가 독일에 남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이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을 통해 독일에서 차지할 수 있는 영예는 모두 차지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히츠펠트의 입장에서, 이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그가 한 차례 고사했던 독일 대표팀 감독직과 해외 무대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이상 독일축구협회가 요하킴 뢰브 체제를 유로 2008까지 신뢰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히츠펠트의 차후 행보는 해외 무대 진출설에 무게가 쏠린다. 설사 그가 1년 정도의 공백기를 더 가진다고 해도 말이다.

히츠펠트는 해설위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해외 리그를 유심히 지켜본 것으로 알려진다. 바이에른의 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빠른 템포의 축구를 강조하며 그 예로 아스날을 든 것은 위와 같은 전력을 감안할 때 납득이 가능한 일이다. 또한 그는 휴식기간 중 영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에 많은 잉글랜드 언론에서는 히츠펠트가 잉글랜드에서 감독 데뷔전을 가질 것이라는 보도를 낸 바 있다. 여전히 정점에 있지만, 서서히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의 결별을 생각할 때가 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대표적인 팀이었다. 히츠펠트가 최근 부진으로 질타받고 있는 '삼사자 군단'을 맡는다고 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이에 비하면 다움의 행보는 당분간 쾰른과 함께할 가능성이 크다. 쾰른의 팬들은 도르트문트의 팬들과 더불어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열광적인 팬들로 손꼽힌다. 그러나 반대로 이야기하면, 성적에 따라 팬들의 심기가 자주 불편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약 쾰른이 이번 시즌을 이대로 마무리한다면, 즉 승격과 어떠한 관련도 없는 순위로 시즌을 마감한다면 쾰른팬들의 분노는 정점에 이를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다움의 경우는 다르다. 비록 올시즌 농사의 성과물이 2부 리그 잔류라고 하더라도, 아마도 한 시즌 정도는 더 다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현재 다움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올시즌이 아닐지 모른다. 현재 쾰른이라는 팀은 선수 구성부터 전술의 틀까지 완벽한 다움의 팀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다움에게는 11경기가 남아있고 산술적으로 승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낙천적인 인물은 명문 쾰른의 부활이라는 명제하에 젊은 선수들의 활용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 모른다. 그가 항상 새로운 팀에 몸을 담을 때마다 해왔던, 체질 개선과 선수단의 동기부여는 쾰른의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움의 전략이 성공을 거둔다면, 늦어도 다음 시즌쯤에는 2부 리그에서 승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1부 리그에서 롱런할 수 있는 팀으로 거듭나서 말이다.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는 다움의 감독 커리어에도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6년전에 못이룬 대표팀 감독의 꿈도 다시 도전할 수 있을지 않을까.

아무튼 팀도 틀리고, 과거도 틀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까지 틀려보이는 두 감독의 복귀지만, 전술적인 측면에서 파급력이 큰 두 명장의 컴백은 리그에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90년대말, 분데스리가 팀들의 전술이 다움의 공격형 축구와 히츠펠트의 수비형 축구로 양분됐던 것을 기억하면 이는 일견 수긍이 가는 이야기이다. 소방수로 등판한 두 감독이, 9회말 투아웃까지 경기를 마무리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 사커라인 김태우 -
Posted by 임 군
야인생활의 청산, 크리스토프 다움

때는 2000년 가을, 한 축구 감독이 상습적으로 코카인을 복용하는 등 문란한 사생활을 즐겨왔다는(?) 보도가 독일과 유럽 전역으로 타전되며 비상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사실 수 많은 사람들이 음성적으로 마약을 즐기는 유럽에서, 이러한 사건은 한 개인의 패륜행위로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서 있는 이 축구 감독의 비중은 독일과 유럽을 시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아직도 '코카인 파동'으로 회자되는 이 사건의 주인공은, 유로 2000에서의 비참한 성적 이후 경질된 에리히 리벡의 후임으로 독일 대표팀의 감독이 '될뻔했던' 크리스토프 다움이었다.

선수 시절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감독 무대에 도전한 이들도 있고, 현역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지만 일찍이 지도자의 길에 뛰어들어 성공한 이들도 많다. 앞서 언급한 히츠펠트도 그렇지만, 다움도 분류를 하자면 후자의 쪽에 가까울 것이다. 다움의 선수 경력은 자료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일천하다. 1986년 전통의 명문이자, 분데스리가 초대 챔피언이었던 쾰른의 감독을 맡을 당시 그의 경력은 쾰른의 유소년팀 감독과 A팀 어시스턴트 코치 경력, 그리고 체육학 학사가 전부였다. 떨어지는 인지도는 쾰른 팬들의 우려감과 비판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움은 확고한 지도력과 이에 뒤따르는 가시적인 '성적'으로 이러한 목소리를 잠재웠다.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86년부터 4년간 쾰른을 이끌면서 두 번의 준우승, 한 번은 3위를 차지하며 명문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일조했다. 다움이 팀을 맡을 때만 해도 중위권에 머무르던 쾰른의 성적을 생각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요, 당시 챔피언은 당대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던 바이에른이었다. 사실상 쾰른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을 선사한 셈이다.

쾰른에서의 놀라운 지도력을 인정받아 VfB 슈투트가르트로 자리를 옮긴 다움은 92년 짜릿한 역전 레이스로 3수만에 마이스터샬레를 품에 안았다. 그의 성공은 베식타스를 통해 이어졌고, 96년 레버쿠젠에 이르며 집대성된다. 비록 레버쿠젠 시절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화끈한 공격 축구와 기량을 중시하는 선수 등용으로 또 한 번의 센세이션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80년대 후반 UEFA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분데스리가의 신흥 강호로 발돋움했던 레버쿠젠은 90년대 중반에 들어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95/96 시즌에는 겨우 승점 2점차로 강등을 아슬아슬하게 면하면서 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높아져만 갔다. 그러나 다움이 취임하고 난 이후의 레버쿠젠은 달라졌다. 분데스리가의 감독 중에서도 낙천주의자로 이름이 높은 다움은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이름값이 높은 선수라도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 과감히 배제시키는 '충격요법'을 통해 팀을 재정비했다. 이와는 반대로, 젊거나 인지도가 높지 않은 선수라도 실력과 자신의 전술에 부합하면 과감히 등용했다. 국제 레벨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20대 초반의 옌스 노보트니에게 과감히 팀의 주장을 맡긴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했다. 이 결과, 95/96 시즌 승점 38점을 따는 데 그쳤던 레버쿠젠은 다움이 부임한 첫 시즌인 96/97 시즌에는 배에 이르는 69점을 획득하며 2위에 오른다.

이러한 다움의 '마법'은 계속 효력을 발휘했다. 98년 3위, 99년과 2000년에는 연속 2위를 차지했다. 특히 2000년은 레버쿠젠과 다움에게 많은 아쉬움을 선사한 시즌이었다. 레버쿠젠은 최종 라운드가 시작되기 전까지 2위 바이에른 뮌헨에 승점 3점을 앞서, 사실상 첫 우승의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레버쿠젠의 최종전 상대는 중위권팀 운터하잉. 레버쿠젠은 운터하잉 원정에서 비기기만 해도 클럽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었지만, 전반 20분에 터진 미카엘 발락의 자책골과 후반 추가골을 허용하며 0:2로 패배, 분루를 삼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화끈해지는 다움의 공격 스타일은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팀원의 공격 재능을 극대화시키며, 선이 굵은 축구와 아기자기한 축구를 혼용하여 상대의 수비를 무너뜨리는 모습은 전성기의 독일 대표팀을 연상시켰다. 그렇게 다움은 승승장구하는 듯 했다.

리벡과 독일 대표팀의 좌초 이후, 다움은 별다른 이견없이 대표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낙점됐다. 그만큼 그가 분데스리가에서, 특히 레버쿠젠을 통해 팬들에게 보여준 임팩트 자체는 거대했다. 특히 선수의 능력을 보는 안목에서 탁월함과 차별성을 인정 받았던 다움이었기에, 계속되는 세대 교체 실패로 만신창이가 된 대표팀의 재건에 적임자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00/01 시즌까지 소속팀과 계약이 되어 있었던 그는, 레버쿠젠과의 계약을 모두 채운 뒤 나치오날엘프의 수장으로의 등극이 예정된다. 그러나 2000년 10월에 터진 '그때 그사건'은 다움의 모든 것을 앗아가버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의 제네럴 매니저로, 독일 대표팀의 '원로'이기도 한 울리 회네스는 다움의 상습적인 코카인 복용을 폭로했으며 몇몇 클럽의 원로들이 이에 동조하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이에 다움은 즉각 반박하며 도핑테스트를 위해 머리카락까지 직접 제출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맞섰으나 돌아온 검사 결과는 '양성'이라는, 그에게는 치명적인 선고였다. 독일 검찰이 사건에 직접 뛰어듬은 물론, 독일축구협회에서도 진상규명위원회를 자체적으로 조직할 정도로 파장이 컸던 이 사건에서, 다움은 독일 대표팀 감독과 레버쿠젠의 감독직을 모두 잃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인' 생활은 시작되었다.

우리 나라야 마약에 중독되어 자제심을 상실하거나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다움에게 특별한 형사 처벌은 가해지지 않았다. 그는 구치소에 가지도 않았고, 감독 자격을 상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독일 무대를 떠나야했다는 것은, 이 동독 출신의 감독에게는 구속 수감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떤 분데스리가 클럽들도 도덕성을 상실했던 다움에게 팀의 감독직을 제의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다움은 유배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베식타스, 오스트리아 빈, 페네르바체를 떠돌게 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움의 능력은 유배 중에서도 빛을 발했다. 특히 페네르바체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간 것은 그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다움의 지도 기간 중, 페네르바체는 챔피언스리그의 단골손님으로 자리잡았을 뿐만 아니라, 갈라타사라이나 베식타스 같은 '이스탄불 친구들'에게 우위를 점했다. 다움의 독일 복귀설이 슬슬 고개를 든 것은 이 시기였다. 샬케 0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심지어는 그를 내친 바이어 레버쿠젠 등 분데스리가의 상위권 팀들이 감독 교체의 시점에서 그의 이름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다움의 보결로 유로 2004까지 대표팀을 이끌었던 루디 푈러가 물러나자 다움은 오트마 히츠펠트와 함께 가장 유력한 차기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코카인 파동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던 다움은 독일로의 복귀를 가족 문제 등을 들어 번번히 고사한다.

하지만 기회, 혹은 독일 복귀의 계기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온다. 신병 치료차 쾰른을 방문했던 다움은 당시 부진한 성적으로 질타를 받고 있었던 친정팀 쾰른의 구애를 받게된 것이다. 지난 시즌 1부 리그에서 강등, 2부 리그에서 재승격을 노리고 있었던 이 분데스리가 초대 챔피언은 시즌 초반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라투어 감독을 경질했던 차였다. 홀거 게어케 감독 대행으로 유지되고 있던 팀 앞에, 다움이 나타난 것이다. 쾰른 팬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구세주의 등장이었다. 당초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빅 클럽을 고려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상상 이상의 구애에 난색을 표현했던 다움은, 결국 2010년 6월까지의 장기 계약을 골자로 2006년 11월 27일 쾰른의 사령탑에 취임한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유배 생활의 종결이었다.

- 사커라인 김태우 -
Posted by 임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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