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출신의 골키퍼 에르지 두덱이 올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폐예노르트와 리버풀을 거치며 유럽 최고의 골키퍼로 떠올랐던 두덱은 지난 시즌 리버풀과의 계약을 마치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불과 한시즌도 채 지나지 않은채 두덱이 갑자기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려는 이유는 남은 시즌 동안 경기 감각을 회복해 폴란드 국가대표로서 유로 2008에 참여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예르지 두덱은 스페인 일간지 마르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레알 마드리드와 3년간 계약했지만 팀을 떠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폴란드가 처음으로 유럽선수권대회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레오 벤하커 감독은 내가 경기에 더 많이 나서면 유로 2008 주전선수가 될 수 있다고 얘기했다"며 팀을 떠나고자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폴란드의 역사적인 순간이 될 수 있는 유럽선수권대회에 반드시 참여하고 싶고 레알 마드리드에거 출전기회가 별로 없어 협상하길 바란다"며 "내가 26살이라면 레알 마드리드의 세컨드 초이스에 만족하고 팀을 떠나지 않았겠지만 나는 34살이고 그들은 매우 중요한 토너먼트에서 나를 불러줬다. 기회는 한번 뿐이지만 유로 2008까지 몇달이 남지 않아 내 의견을 솔직히 말하고 싶다"며 레알 마드리드와의 작별을 예고했다.

유럽선수권대회에 처녀출전하는 폴란드는 유럽선수권대회 조별예선에서 포르투갈, 세르비아를 제치고 A조 1위로 올라서며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유럽선수권대회 조별 예선 동안 폴란드의 골문은 셀틱의 아르투르 보루치가 안정적으로 책임져 왔다. 따라서 두덱은 이적을 하게 되더라도 보루치를 비롯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토마스 쿠쉬착 같은 훌륭한 골키퍼들과의 험난한 주전경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 사커라인 이창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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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임 군
퍼왔습니다.
출처 : http://www.bananasale.com/wordpress/?p=489




엠파스에 이런 기사가 떴습니다.

폴란드 이민자 사망 비디오에 전세계 분노
http://news.empas.com/show.tsp/20071117n02376

그래서 이래저래 검색해서 비디오를 찾아 봤습니다. 진짜 분노할만합니다. 지난달 10월에 있었던 일인데 경찰에서는 반항을 해서 전기충격기를 사용하여 죽었다라고 발표했는데 이 비디오가 공개되면서 사망한자가 전혀 반항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 전기충격기를 사용… 사망하게 만들었다는 사실과 사건을 거짓으로 무마하려고 했던 잘못이 전세계에 공개되었습니다.


[실제 촬영된 영상, 풀 버젼]


“… I heard him saying code Red” 라는 말이 마지막에 나오는데… code Red 는 사망입니다.

5만 볼트로 전기 충격을 당한겁니다.


[뉴스 비디오]


캐나다 언론 기사 내용


결국…

(사건개요)
1. 폴란드 이민 온 자기 어미니랑 함께 살려고 캐나다에 온다.
2. 무슨 이유에선지 세관을 뒤늦게 통관
3. 기다리던 어머니는 몇시간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감 (공항에서)
4. 아들은 계속 나가지 못하게 하는거에 분노하기 시작
5. 경찰이 와서 전혀 반항하지 않는 사람을 전기충격기로 제압해서 사망케 함
6. 이것을 어떤 일반인이 촬영
7. 촬영후 경찰에 신고해야겠다 싶어 촬영 몇일후 48시간내 돌려달라는 조건으로 경찰서에 신고
8. 신고한 동영상, 48시간이 됐는데도 돌려받지 못함
9. 그 일반인이 경찰이 동영상 조작 또는 사건 축소 한다고 생각이 들어 변호사 선임, 비디오 공개
10. 경철이 금주 수요일날 뒤늦게 동영상 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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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임 군
지난 2007년 9월 1일은 독일 대표팀과 바이에른 뮌헨의 골잡이 미로슬라프 클로제(29, Miroslav Klose)에게 있어 특별한 날이었다. 그 이유는 클로제가 이날 벌어진 함부르크와의 07/08 분데스리가 4라운드 경기에서 오른쪽을 파고든 크리스티안 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리그 통산 100호골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렐의 크로스를 골문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상대 수비수 바스티안 라인하르트와 경합을 벌인 클로제는 머리로 받아 넣으려는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볼이 허벅지 부위에 맞고 들어가는 약간의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미로슬라프 클로제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딱 알맞은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클로제는 화려한 발재간과 눈에 띄는 개인기가 없이 그렇게 100골을 넣어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독일 축구계에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 자리잡고 있는 클로제지만 사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수많은 난관을 거듭하며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형적 스타다. 그는 축구 선수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고, 설사 프로 축구 선수가 됐더라도 독일을 위해 뛰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클로제는 1978년 6월 9일 독일이 아닌 폴란드의 오폴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요제프 클로제는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했고 폴란드 대표팀으로 경기에 나선 경력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저명한 선수 출신이었다. 또한 그의 어머니 바바라는 핸드볼 선수 출신으로 폴란드 대표팀에서만 82경기에 나섰으며, 두 번이나 올해의 선수로 뽑혔던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었다. 클로제의 빠른 스피드와 유연한 몸, 그리고 뛰어난 점프력은 이러한 선수 출신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클로제가 태어날 당시 폴란드는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 있던 상태였고 민주화운동 역시 공산주의 정권의 탄압을 받던 시대였다. 이에 클로제의 부모는 1981년 프랑스로의 이주를 선택하게 되고 1987년에는 독일 카이저스라우턴 교외에 위치한 쿠젤에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독일어를 거의 하지 못했던 클로제는 내성적인 성격과 맞물려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이러한 클로제의 유일한 돌파구가 바로 축구였다. 축구는 언어와 상관 없이 그가 동급생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였고 또래 아이들보다 뛰어난 축구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클로제가 학교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도구이기도 했다.

그 이후 클로제는 독일 7부 리그에 속해있는 작은 클럽 블라우바흐-디델코프에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클로제의 내성적인 성격은 쉽게 고쳐질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기본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태도가 소극적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감독이나 선수들 사이에서 존재감 없는 선수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그의 어머니 바바라는 클로제가 축구 선수가 되는 것 대신 직장에 취직해 남들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삶을 살길 원했다고 한다. 축구 선수의 자질을 발견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운동 선수로서의 고난을 잘 알고 있었던 그의 어머니는 클로제를 직업 학교에 보냈고 클로제는 목수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축구는 부가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낮에는 목수일을 하고 저녁에는 축구장을 찾는 것이 어린 클로제의 하루 일과였던 것이다.

98년 클로제는 5부 리그에 속해있던 홈부르크로 이적했지만 축구 선수로서의 대성 가능성을 점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나이가 되어 있었다. 또한 홈부르크에는 클로제보다 더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고 이는 클로제의 출장 기회를 제한하는 요소로 다가왔다. 그러나 뛰어난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열망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클로제는 남들보다 덜 쉬고 더 노력하는 자세를 꾸준히 유지했고 결국 99년 그 지방의 가장 큰 팀이자 독일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 카이저스라우턴에 입단하기 이른다.

물론 클로제의 계약은 3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는 카이저스라우턴 아마추어팀과의 계약이었다. 그러나 뛰어난 점프력과 헤딩 능력, 그리고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클로제의 능력은 오토 레하겔 당시 카이저스라우턴 감독의 눈에 띄었고 그는 2000년 4월 15일 아인트라흐프 프랑크푸르트전에서 후반 30분 교체투입되며 대망의 분데스리가 데뷔를 이루게 된다.

그 이후 클로제는 카이저스라우턴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자리 잡으며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00/01 시즌에는 29경기에서 9골을 뽑아내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러한 결과로 인해 당시 대형 스트라이커에 대한 갈증이 증폭되고 있었던 독일 대표팀에도 소집되기에 이른다.

클로제의 대표팀 소집 기운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던 2001년 1월, 폴란드 대표팀의 예지 엥겔 감독은 클로제를 찾아와 폴란드 대표팀 승선을 제의한다. 그러나 독일 대표팀의 일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클로제는 이러한 폴란드 대표팀의 제의를 거부했다. 결국 루디 푈러 당시 독일 대표팀 감독의 부름에 응한 클로제는 2001년 3월 24일 알바니아전에서 대표팀 데뷔전을 가지며 자신의 꿈을 이뤘다. 이 경기에서 클로제는 팀의 두 번째 득점이자 결승골을 터트리며 완벽한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클로제의 질주는 계속됐다. 클로제는 01/02 시즌 31경기에서 16골을 터트리며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골잡이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세계 제 2차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전투기로 활약했던 '매셔슈미트'가 그의 별명이 된 것도 이맘때 쯤이다. 클로제는 마리오 바슬러, 링콘과 같은 훌륭한 미드필더들의 패스를 받아 오른발, 왼발, 그리고 머리를 가리지 않고 골을 성공시키며 리그에 완벽히 적응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연출됐다.

당시 뚜렷한 스트라이커감이 없었던 독일은 대표팀에 입성한지 갓 1년이 지난 클로제에게 전방 공격수의 무거운 임무를 맡기며 대회를 시작했다. 클로제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첫 경기였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대회 첫 해트-트릭(3골 모두 헤딩골)을 기록했고 아일랜드전과 카메룬전에서 연거푸 골을 성공시키며 새로운 신데렐라의 출현을 알렸다. 클로제가 터트린 5골은 모두 헤딩골이었는데 어린 시절 그가 자신의 무기였던 높은 점프에 이은 헤딩 연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음을 감안하면 노력의 보상을 받은 셈이었다.


토너먼트 진출 이후 상대 수비수들의 적극적인 밀착 방어에 고전하며 골을 넣지 못했지만 어쨌든 클로제는 득점 부문 2위에 올랐고 독일은 준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수확을 얻으며 귀국할 수 있었다.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클로제는 AS 로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해외 명문 클럽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카이저스라우턴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클로제는 친정팀 잔류를 선언하며 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클로제의 카이저스라우턴 생활은 그리 오랜기간 지속되지 못했다. 클로제의 애정에도 불구하고 당시 카이저스라우턴은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 리그 참여를 위한 라이센스 획득 비용도 마련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불건전한 재무 구조로 인해 승점 차감 처분까지 받기도 했던 카이저스라우턴은 팀 내 최고의 자산이었던 클로제의 처분을 통해 회생을 노렸고 이에 클로제는 팀에 500만 유로의 이적료를 안기고 정들었던 고향땅을 떠나 베르더 브레멘에 입단한다. 이것이 2004년 여름의 일이었다.

당시 클로제는 다소간의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그는 카이저스라우턴에서의 마지막 두 시즌 동안 58경기에서 19골을 득점하는 데 그치며 기대에 못미쳤고, 유로 2004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팀의 예선 탈락을 지켜봐야했다. 그리고 클로제는 샬케로 떠난 분데스리가 득점왕 출신의 스트라이커 아일톤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크나큰 부담감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브레멘 입단 초기의 클로제는 심각한 부진으로 일관했고 언론들은 은행 대출까지 받아 클로제를 영입한 브레멘의 선택에 의구심을 표현했다. 긴 패스에 의존했던 카이저스라우턴과는 달리 브레멘은 짧은 패싱 게임을 통한 선수들간의 유기적인 포지션 전환이 필요했고 이러한 축구가 낯설었던 클로제는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항상 노력하는 자세로 브레멘 생활에 임한 클로제의 슬럼프는 오래가지 않았다. 카이저스라우턴과는 달리 브레멘에는 패싱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들이 더러 포진해 있었으며 클로제는 부지런하고 폭넓은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진으로부터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썼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인해 클로제는 초반 부진을 딛고 브레멘에서의 첫 시즌을 32경기 15골의 비교적 준수한 기록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05/06 시즌은 그야말로 클로제의 해였다. 브레멘에 완벽히 적응한 클로제는 26경기에서 무려 25골을 터트렸고 16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총 41번의 골 장면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것이다. 20대 중반 이후에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한 클로제는 이제 더 이상 헤딩만 잘하는 스트라이커가 아니었다. 클로제는 빠른 스피드와 순간적인 민첩성을 이용해 상대 뒷공간을 파고 들었으며, 약점이었던 몸싸움은 영리한 두뇌 회전을 이용해 최대한 득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유도했다. 특히 클로제는 동료들을 위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비이기적인 면모를 과시, 자신이 득점을 하지 못하더라도 팀을 위해 공헌하는 모습으로 한 단계 성장했다는 호평을 받기도 한다.

05/06 시즌에 이어 벌어진 2006년 월드컵은 클로제에게 있어 또 한 번의 전기를 마련해 준 소중한 대회였다. 자국에서 벌어진 이 대회에서 클로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독일의 간판 스트라이커로서 그라운드에 나섰고 그는 대회 기간 중 쉴새없이 골을 몰아치며 5골을 기록, 대회 득점왕에게 주어지는 '골든슈'를 차지하는 영예를 누렸다. 특히 스웨덴과의 16강전에서는 수비진을 흔들며 팀 동료 루카스 포돌스키에게 완벽한 득점 찬스를 내주는 모습으로 경기 MVP에 선정되었으며,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는 조국을 구해내는 동점골을 터트리며 토너먼트에서 약하다는 비난을 잠재우기도 했다. 1년 내내 쉼없이 골 퍼레이드를 이어간 클로제가 2006 독일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클로제는 올시즌을 앞두고 독일 최고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베저슈타디온(브레멘의 홈 구장)의 왕으로 군림했던 클로제가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선수들간의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우승에 대한 염원으로 가득차 있는 클로제의 개인적 야심에 의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 클로제는 지금까지 정상, 즉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카이저스라우턴 시절에는 DFB 포칼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가장 내세울 만한 경력이었고 브레멘 시절에도 번번히 우승 방패 앞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심지어 독일을 대표해 참여한 두 번의 월드컵에서도 각각 준우승과 3위를 기록하며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러한 클로제의 우승을 향한 굶주림과 06/07 시즌 참담한 성적으로 자존심이 실추된 바이에른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양자는 서로의 목표를 이뤄줄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바이에른에서의 첫 시즌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다. 클로제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정상 컨디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초반 8경기에서 8골을 기록하며 뮌헨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있다. 특히 지난 여름 바이에른에 동반 입성한 이탈리아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루카 토니와의 호흡은 환상적이다는 평가다. 토니는 클로제를 두고 "비이기적이며 항상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있는 환상의 파트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한 클로제는 그라운드 위에서의 뛰어난 기량은 물론 사생활과 생활 태도면에서도 팬들의 극찬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클로제는 04/05 시즌 빌레펠트전에서 페널티 킥을 선언한 주심에게 다가가 자신은 상대 선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았음을 주장하며 결승골을 넣을 수 있는 찬스를 스스로 취소, '페어 플레이' 정신을 몸소 선보이며 훈훈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언론과 팬들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스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 내성적인 청년은 조용한 삶을 추구하며 그라운드 밖에서도 모범적인 행동으로 그를 모델로 삼는 많은 '풋볼 키드'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사실 클로제는 여러 부문에서 단번에 눈에 띌만한 선수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리오넬 메시처럼 공을 다루지 못하고, 안드레이 세브첸코의 호쾌함도 없다. 또한 그는 디디에 드록바처럼 신체적으로 강하지 못하며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처럼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는 발재간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클로제는 그의 리그 통산 100번째 골이 보여주듯 화려함 없이도 묵묵히 골을 터트려왔으며 이제 세계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인정받고 있다. 어쩌면 스트라이커는 어떻게 골을 넣느냐보다는 얼마나 골을 넣느냐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클로제는 자신의 커리어를 통해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대한 철저한 관리와 승리에 대한 열망, 발전에 대한 욕구, 그리고 타인과 함께 공존하는 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클로제의 모습은 당분간 그의 시대가 계속 지속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스타답지 않은 그의 조용하고 소박한 삶, 그리고 겸손함도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커리어를 더욱 더 빛내줄 것임도 틀림없다.


Profile

이름 : 미로슬라프 클로제(Miroslav Klose)

생년월일 / 출생지 : 1978년 6월 9일 / 폴란드 오폴레

소속팀 : SG 블라우바흐-디델코프(1987 ~ 98), FC 08 홈부르크(98 ~ 99), FC 카이저스라우턴(1999 ~ 2004), 베르더 브레멘(2004 ~ 07), FC 바이에른 뮌헨(2007 ~)

분데스리가 출전 및 득점 : 217경기 / 105골(2007년 10월 27일 현재)

독일 대표팀 출전 및 득점 : 70경기 / 35골


- 사커라인 김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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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청소년 월드컵에 참가하는 조동현 감독의 U-20팀이 드디어 첫 경기를 앞두고 있다.

미국, 브라질, 폴란드와 같은 조에 속해있는 대한민국은 조별 예선 통과는 물론 멕시코 대회의 성적을 뛰어넘겠다는 각오다. U-20팀은 그동안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국가대표와 자국에서 벌어지는 세계대회에 참가하는 U-17팀 사이에 끼여 상대적으로 이목이 집중되지 않았다. 거대한 수퍼스타가 없었다는 점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난 체코와의 평가전이 TV를 통해 방영 된 뒤 얘기가 달라졌다. U-20팀은 단 한경기를 통해 앞으로 열리게 되는 굵직굵진 한 대회에 참가하는 팀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팀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국가대표 레벨이 아닌 U-20 레벨에서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강하다는 얘기가 나올 법 하지만 최근 참가한 U-20대회의 성적을 본다면 그렇지만도 않다. 이동국, 김은중이 투톱을 이뤘던 1999년의 나이지리아 대회에서는 1승 2패로 예선 탈락했고 최성국과 정조국이 투톱을 이뤘던 2003년 UAE 대회에서는 16강에 진출했지만 일본에게 패하고 말았다. 박성화가 감독을 맡고 많은 프로 선수들의 참가로 어느 때보다 기대를 모았던 2005년 핀란드 대회 역시 단 1승을 거두는데 그치고 말았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U-20팀의 구성을 보면 23명의 선수 중 15명의 선수가 프로에 소속되어 있다. 물론 이들 중 완전하게 주전 자리를 꿰찬 선수는 많지 않지만 모두 1군 경기에 자주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이다. 다시 말해 슈퍼스타는 없지만 상향평준화 된 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U-20팀은 상황에 따라 3-4-1-2 와 3-5-2를 번갈아 가면서 사용한다. 하태균과 심영성이 투톱을 이루고 송진형과 이상호, 이청용이 중앙 미드필더, 박주호와 박종진이 좌우 미드필더를 이룬다. 스리백은 최철순을 중심으로 기성용과 배승진이 주전으로 경기에 나서게 될 확률이 높다. 골키퍼는 김진현.

U-20팀의 최대 강점은 공격력에 있다. 조동현 감독의 전술은 체력을 중시하며 빠른 패스 워크를 바탕으로 쉴 새 없는 공격을 추구한다. 특히 수비에서 측면 미드필더나 공격수에게 단번에 넘어가는 패스가 조동현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전술 중에 하나다.

이는 지금까지 많은 평가전을 통해 나타났던 전술이며 지난 체코와의 평가전에서도 드러났던 부분이다. 이 같은 전술은 수비수들의 킥이 정확해야 가능한 것으로 킥이 좋은 기성용의 포지션 이동도 이와 무관치 않다. 뛰어난 미드필더 자원 역시 공격력을 극대화시켜주기에 충분하다. 송진형, 김동석, 이청용, 이상호, 박종진 등의 미드필더들은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나고 프로 경기를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도하기 충분하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태균, 심영성, 신영록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격 자원도 언제든지 득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태균은 수원에서 -어쨌거나- 나드손과 안정환을 밀어냈으며 심영성은 제주의 붙박이 주전이다.

좋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고 장점이 많은 팀이지만 불안요소도 존재한다. 첫 번째는 바로 최대의 강점인 공격력이다. U-20팀은 쉴 새 없이 압박이 들어가며 많이 뛰고 밀어 붙이는 스타일이다. 다시 말해 상대가 이 같은 상황을 역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가 수비를 두텁게 하며 우리 팀을 끌어 올린 다음 역습으로 이용한다면 충분히 당할 수 있는 모습이다. 또 90분간의 체력적인 문제도 묵과할 수 없다. 롱킥은 측면 미드필더가 한 명뿐인 U-20팀에게 체력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공격 방법이다. 무조건 빠른 템포만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쉬어 가는 것이 필요한 U-20 팀이다.

선수들의 포지션 변경도 자칫 화를 부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청용과 기성용, 최철순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이상호까지 주전 선수 중 절반이 자신의 포지션과 다른 포지션의 임무가 주어졌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이들에게 모두 수비의 역할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공격력을 지녔다고 한들 수비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결코 좋은 공격도 할 수 없음을 상기한다면 이는 시한폭탄이 될 확률도 충분하다. 전문 수비수가 부족한 것은 분명 U-20팀에게 아쉬운 부분이다. 본래 포지션이 센터백이 아닌 선수가 센터백을 봐도 또래의 선수들보다 잘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부분인가.

미국-브라질-폴란드로 이어지는 경기 일정은 우리에게 결코 유리한 일정은 아니다. 첫 경기인 미국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자칫 미국전에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97년의 악몽이 되풀이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U-20팀이 브라질이라는 팀을 이기지 못할 상대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점이 없고 장점만 있는 팀은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U-20팀 역시 단점이 존재하지만 뛰어난 장점들이 있기에 어느 대회보다 기대가 된다. 2003년과 2005년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어느새 각 구단의 든든한 주전들이 되었다. 이번에도 기대되지 않는가? 스무 살 청년들의 무한한 가능성이!

- 사커라인 박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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