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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프리미어리그를 보게 된 이후 손에 꼽는 명승부들이있다. 그 중에 바로 00-01 시즌 리즈 유나이티드의 홈 앨런 로드에서 벌어진 리즈와 리버풀간 경기(리즈 4-3승)는 다시 테이프를 돌려봐도 전율이 오르는 명승부인데 바로 마크 비두카가 혼자 네 골을 쏟아내며 대역전극을 이끌었던 경기다. 이렇게 최고수준에서 최고수준의 축구를 보여주던 리즈의 모습은 재정파탄으로 말미암아 불과 6년이라는 시간 속에 3부리그 (디비전 1) 강등이라는 믿기 힘든 결과로 이어졌다.
리즈가 최전성기를 달리던 때는 리그성적을 3위로 마친 99-00시즌과 조별리그에서 밀란, 바르셀로나와 한 조에 편성되는 최악의 대진운을 뚫고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라선 00-01시즌일 것이다. 안정적인 허리를 바탕으로 좌우중앙 할 것없이 끊임없는 공격에 데이빗 오리어리 감독의 적절한 용병술까지 더해지며 리즈의 축구는 팬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00-01시즌 후반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면서 생긴 체력저하와 수비진 난조로 당시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걸린 3위자리를 차지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 시즌이 리즈가 내려오게된 기점이었다.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한 장 늘게된 01-02시즌에 재기를 노렸지만 잇단 부상자와 사기 저하로 고전을 면치못했으며 열정적으로 임했던 UEFA컵에서도 PSV아인트호벤에게 홈에서 덜미를 잡혀 8강에도 들지 못했다. 이렇게 계속된 성적부진과 함께 찾아온 것은 재정파탄이었다.
2000년 11월 리오 퍼디난드(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세계에서 가장 비싼수비수로 만들만큼 이적시장에서 큰 손 노릇을 해온 리즈였지만 챔피언스리그 진출 실패는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결국 퍼디난드를 다시 한 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비수(지금도 유효하며 이적료가 3000만 파운드)로 만들어주며 선수 대이탈을 지켜봔 봐야 했다.그것도 제 값을 받지 못하고. 퍼디난드의 이탈이후 리즈의 아이콘이던 해리 키월(현 리버풀), 조나단 우드게이트(현 미들스브로), 그 외 여러 스타급 선수들이 앨런 로드를 떠나고 말았다. 03-04시즌 강등을 막기위해 몸부림치던 앨런 스미스와 마크 비두카가 각각 숙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미들스브로로 떠나면서 스타급 선수들의 대이탈은 마무리가 됐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리즈를 떠난 선수들이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새 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00-01시즌의 정점에 올랐을 때 리즈에 있던 선수들은 데이빗 배티와 나이젤 마틴을 제외하고는 20대 초중반의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지금의 모습은 아쉬울 수 밖에없다. 결국 선수가 최적의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소속팀의 전술적인 면과 팀내 멤버간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아쉬움을 뒤로하며 00-01 시즌 당시 뛰던 베스트 11들의 근황과 약간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00/01 리즈 Best 11
--------스미스-----비두카--------- 키월---다쿠르---배티---보이어 하트---마테오--퍼디난드-밀스 -----------------마틴---------------- 감독 : 데이빗 오리어리
조나단 우드게이트(미들스브로)가 빠져 의아해 하실수도 있겠으나 우드게이트는 그 당시에도 부상이 많았고 이 진용이 리즈가 최상의 경기력을 낼 수 있는 포진이었다.
데이빗 오리어리(아일랜드/무직) - 전술적인 융통성이 다소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리즈시절 오리감독의 공격적인 축구 색깔은 적어도 보는이들로 하여금 흥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퍼디난드의 맨유 이적을 막으려다 2002년 경질된 오리어리 감독은 1년을 쉰 뒤 아스톤빌라의 감독직에 올랐으나 부족한 팀의 지원과 더불어 자신의 색깔을 발휘하지 못한체 3년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새 팀을 찾는 게 어려워보인다.
나이젤 마틴(잉글랜드/은퇴) - 푸근한 옆집 아저씨같은 인상을 주는 마틴은 7년이나 리즈의 뒷문을 지켰다. 안정감있는 방어능력과 침착성, 정확한 판단력으로 오랫동안 데이빗 시먼에 이은 잉글랜드 NO.2 골리로 명성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월드컵에 다녀온 뒤 2002년 테리 베너블스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폴 로빈슨을 주전으로 기용하기 시작했고 후보골리로 위상이 추락하고 말았다.(지난시즌 이운재선수가 겪은 경우와 비슷하다.) 결국 에버튼으로 자리를 옮겨 두시즌 반동안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 나름대로 명예를 회복하며 긴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대니 밀스(잉글랜드/맨체스터 시티) - 스킨 헤드가 매력적인 밀스는 탁월한 오버래핑 능력과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수비능력으로 주가를 높였다. 특히 게리 네빌이 부상으로 빠지며 2002 월드컵 출전에 실패하자 그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웠다. 역시 리즈에서 거둔 활약이 뒷받침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밀스는 2004년 팀을 떠난 이후 별볼일 없는 선수로 전락했다. 미들스브로를 거쳐 2005년 맨체스터 시티에 입성한 이후 올 시즌에는 챔피언십 헐 시티로 임대되기 까지하며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 시즌 맨체스터 시티 소속으로 출장한 경기는 단 한 경기에 그치고 있으며 그 자리는 떠오르는 샛별 미카 리차즈와 순지하이가 차지하고 있는 상태. 이언 하트(아일랜드/레반테-스페인) - 하트의 최전성기를 본 사람들은 그의 탁월한 왼발킥이 발휘하는 마법들을 많이 봤을 것이다. 맨유에게 베컴이 있다면 리즈에는 하트라는 무시무시한 왼발 프리키커가 존재했으며 그 하나만으로도 베스트 11에 있어야할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출중한 공격능력을 지녔지만 측면수비수로서는 치명적인 순발력의 문제를 안고 있던 하트는 2002년 오리어리 감독이 떠난 이후 자리를 잃어갔고 팀이 강등된 2004년 스페인 레반테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이적 첫 시즌 개막전에서 골을 넣으며 비교적 순조롭게 출발하며 첫 시즌을 무사히 보냈으나 05-06시즌부터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 간간히 대표팀에만 나갈 뿐.
리오 퍼디난드(잉글랜드/맨유) - 퍼디난드가 리즈에 온 것은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 엄청난 발전의 계기로 작용했다. 리즈같이 아주 크지 않은 팀이 챔피언스리그 토터먼트를 거쳤고 리그에서 치열한 순위경쟁을 펼쳐야하는 상황은 웨스트햄에서 더 큰 도전을 원하던 퍼디난드에게는 큰 성장동력으로 작용했음이 분명했다. 퍼디난드가 웨스트햄에서 바로 맨유나 아스날 같은 탑클럽으로 바로 이적했다면 이렇게 잘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퍼디난드는 리즈에서 20개월여 보여준 활약은 그를 24살에 3000만 파운드짜리 선수로 만들었다. 균형감있는 체격조건을 바탕으로 순발력과 수비지휘능력을 갖춘 퍼디난드는 맨유에 온 첫 시즌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몸값을 했지만 젊은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었던 탓인지 그 이후 2년여간의 모습은 아쉬움이 많았다. 지난시즌 후반부터 경기력을 완벽히 회복한 모습을 보였지만 현재 맨유 수비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퍼디난드가 아닌는 네마냐 비디치가 아닐까?
도미닉 마티오(스코틀랜드/스톡 시티-챔피언십) - 팀의 유틸리티 플레이어인 마티오는 중앙수비도 잘했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레프트백,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며 팀이 어려울 때 한 몫해주는 선수였다. 그런 유용성덕분에 감독과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마티오는 역시 강등과 함께 팀을 떠나 블랙번에 안착했지만 나이를 속일 수 없었다. 2년 반 동안 31경기 출장에 그치던 마티오는 결국 올 1월 스토크 시티로 이적하며 선수생활의 말년을 조용히 보내고 있다.
올리비에 다쿠르(프랑스/인터밀란-이탈리아) - 앞서 언급한 리즈와 리버풀 경기에서 비두카와 함께 다쿠르의 활약도 필자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다쿠르는 그 시즌 태클 성공률 1위라는 수준급의 수비력을 보유한 동시에 정교한 스루패스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필자는 파트릭 비에이라, 엠마뉴엘 프티, 클로드 마켈렐레를 비롯해 다쿠르를 보며 프랑스에는 왜 이렇게 좋은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가 많은가 감탄하기도 했었다. 리즈에서 거둔 성과로 심심치 않게 이탈리아 이적설에 연루되오던 다쿠르는 팀과 재계약에 실패하는 등 팀과 관계가 얽히며 결국 2003년 1월 AS 로마로 옷을 갈아입었다. 로마에서 보여준 초반 활약은 준수했지만 2004년부터 다니엘레 데 로시가 빠르게 성장하며 자리를 위협했고 선수층 보강을 원했던 인터밀란으로 2006년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워낙 넓은 선수층을 지닌 인터에서 다쿠르가 설 땅은 넓지 않았다.
데이빗 배티(잉글랜드/은퇴) - 리즈의 선수들 상당수가 '튀는 부류의 선수'들이었지만 데이빗 배티는 그런 부류와 정반대였다. 나이젤 마틴과 함께 팀내에서 최고참급이었던 배티는 자신의 주 포지션처럼 팀내에서도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양쪽 수비들이 마음놓고 공격진으로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은 배티가 뒤에서 이들의 공간을 잘 메워주었고 다쿠르가 빛날 수 있었던 것도 배티의 존재가 컸음을 무시할 수 없다. 리즈의 강등과 함께 선수생활을 마감한 배티는 튀는 리즈 선수단에서 전술적으로나 팀내부적으로 뺄 수 없는 선수였다.
리 보이어(잉글랜드/웨스트햄) - 개인적으로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수다. 보이어는 말썽을 많이 일으키기도 했지만 실력으로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는 부류의 선수였다. 보이어의 장점은 순간 스피드가 무척 빨라 공간침투에 능했고 곧잘 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일정수준의 돌파능력까지 갖춰 팀 공격의 첨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뻥축구로 흐를 수 있는 리즈는 공격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01년부터 팀과 재계약을 거부하며 시간을 끌던 보이어는 웨스트햄을 거쳐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다. 2004년 뉴캐슬에 거액을 받고 입성한 보이어는 뉴캐슬에 부족한 공격다양성을 넓혀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팀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던 유명한 다이어와 격투장면을 차치하고라도 보이어는 뉴캐슬에서 있던 시간동안 자신의 '끼'를 발산하지 못했다. 그것이 실패의 원인이되었으며 지난해 웨스트햄에 다시 돌아왔지만 시즌 내내 부상을 달고 다녔다. 웨스트햄이 잔류하더라도 꾸준한 출장기회를 받게될지 의문이다.
해리 키월(호주/리버풀) - 어떤 선수들을 둘러봐도 키월만큼 10번 셔츠가 잘 어울리는 인물도 드물었다. 키월은 (실전에서도 라보나킥을 잘 써먹던)화려한 발재간과 담력, 언제든 골을 넣을 수 있는 정교한 킥까지 지닌 최고선수가 될 가질을 모두 갖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리즈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해 리즈에서 최고의 기량을 만개한 키월은 단연코 리즈를 등지지 않을 것이라 팬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계약만료를 1년 앞둔 2003년 여름 키월은 이적료 3백만 파운드의 헐값으로 그토록 왼쪽자원을 원하던 리버풀로 떠났다. 잘나갈 때는 그 10배의 액수로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던 키월의 능력치였지만 그 때부터 다소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리즈에서는 '리즈 그 자체'였던 키월이었지만 리버풀에서는 '리버풀의 일원'일 뿐이었으며 그런 심리적 조건의 차이가 키월이 리즈시절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보인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으며 자신의 오랜 숙원을 풀었지만 그 이후 부상으로 보기 힘들다.
앨런 스미스(잉글랜드/맨유) - 스미스는 골을 잘넣는 공격수라고 하긴 어렵지만 스미스의 있고없고에 따라 리즈가 지닌 공격의 세기가 달라졌다. 간단히 말하면 수비수들이 막기에 짜증나는 공격수다. 이러한 점이 많지 않은 득점기록으로도 그가 맨유에 입성할 수 있던 원인이다. 그리고 2002년도 리즈시절이나 지난시즌처럼 팀사정에 따라 중앙미드필더로 변신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팀에 대한 높은 충성도나 전술적 유용성은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은 팬들과 감독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강등된 팀을 뒤로하고 2004년 여름 숙적 맨유로 이동한 스미스는 최근 1년을 부상으로 날려버렸다. 지난해 3월 FA컵에서 당한 부상은 자신을 '포스트 로이 킨'을 만들려던 팀의 계획을 어렵게 했으며 부상에서 회복된 뒤에도 경기감을 찾지 못해 뛰지 못했다. 스미스는 최근들어 루이 사하의 부상공백으로 차츰 출장시간을 늘려가며 지난 로마와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무려 15개월만에 골을 넣는데 성공했다. 회복의 징조가 보인다고 할 수 있지만 1년동안 비어있는 맨유의 새 '10번'이 될 공격수와 이탈리아에서 내공을 닦고 있는 주제페 로시, 이미 올드트래포드의 킹으로 자리잡은 웨인 루니의 틈바구니 속에서 다음시즌 스미스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마크 비두카(호주/미들스브로) - '플레이메이킹 포워드' 전형적인 콩글리쉬라고 할 수 있지만 비두카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이 단어밖에 없는 것 같다. 유럽내에서도 손꼽히는 체구, 그런 체구와 어울리지 않는 유연함, 그리고 탁월한 패스능력을 지닌 비두카는 정교함만 갖췄더라면 아마 세계최고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선수다. 나머지 10명의 선수들이 그렇게 꾸준하지 못했던 반면 비두카는 미들스브로에 온 이후 부상으로 공백이 있었던 첫 시즌을 빼놓고는 팀의 믿음직한 9번의 노릇을 충실히 해주고 있다.
순발력은 다소 떨어진 인상이지만 골을 뽑아내는 능력은 여전히 리그 정상급에 올라있다. 해리 키월과 다르게 고대하던 월드컵 골은 뽑지 못했지만 비두카의 포스트플레이가 아니었다면 일본전의 대역전극이 가능했을까? 비두카는 팀이 원하는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선수가 비두카다. 이제 미들스브로와 계약이 한달 반 밖에 남지 않았는데 마지막 도전을 감행할 것인가? 아니면 이동국을 계속 팀의 3번 공격수로 남게할 것인가? 거취가 주목된다.
그 외에도 최전성기의 리즈를 거쳐간 선수들은 많다. 잉글랜드의 no.1 골리인 폴 로빈슨, 중요할 때 한 방씩 터뜨려주던 로비 킨, 부지런한 사이드백 게리 켈리 높은 수준을 지닌 선수들이 2000년대 초반 리즈를 거쳐갔다. 이제사 리즈의 옛 선수들을 돌아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하겠지만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꼽히던 리즈의 몰락은 개인적으로 안타까우며 2000년대 초반 팀의 전성기와 함께 활활타오르던 이 선수들의 불꽃이 요즘은 다소 식어버린 것이 아쉬워 이 글을 적는다.
- 사커라인 배철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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