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AC밀란에게선 그들의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는 특유의 노련함조차 보이지 않았다. AC밀란의 형님들은 아스날의 동생들을 쫓아다니는데 바빴고 카카와 피를로는 열번 볼을 잡으면 한두번 정도 돌파나 패스에 성공했을 정도였다. 사실 1차전에서 역시 비교적 아스날이 우위에 있었지만 원정임을 감안하면 밀란의 탄탄한 수비를 칭찬할 만한 경기였다.
하지만 2차전엔 그게 통하지 않았다. 전반 중반부터 아스날의 맹공에 밀리기 시작한 밀란은 결국 경기 종료 10여분을 채 안남기고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중거리슛 한방에 무너졌다. 하지만 이 골 전에도 몇번의 찬스를 아스날 스스로 놓쳤을 뿐 이미 승부는 아스날 쪽으로 기운 듯보였다.
아스날은 1, 2차전에서 모두 밀란의 공격루트를 철저히 봉쇄했다. 카카는 매튜 플라미니의 집중 마크에 제대로 된 역습한번 하지 못했고, 그나마 박스안까지 침투할 경우 아스날의 수비수들에게 집중 견제당했다. 이에 카카는 중앙에서 풀리지 않자 왼쪽 측면으로 빠졌지만 아스날의 라이트백 바카리 사냐는 카카의 빠른 드리블에도 좀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안드레아 피를로 또한 오늘 경기가 안풀리긴 마찬가지. 사실상 밀란 공격의 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피를로는 오늘 몇번의 실수로 아스날의 역습찬스를 내줬고, 사실상 결승골이나 다름없는 파브레가스의 첫번째 골 역시 그의 실수에서 비롯됐다. 세리에A 밀란 경기중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피를로가 안풀리면 밀란은 예상외로 평범한 팀이 되고 마는데 오늘 역시 그 모습 그대로였다.
반면 아스날의 흘렙과 파브레가스는 밀란의 청소기 젠나로 가투소가 압박을 들어오기 전에 이미 공을 동료에게 주고 여우처럼 빠져나간다. 지난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선 측면에서 스피드가 뛰어난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의 경우 협력수비로 차단했지만 중앙에서 스피드가 돋보이는 아스날의 숏패싱 게임엔 가투소 특유의 압박도 별다른 소용이 없어 보였다.
또한 아스날은 아르센 벵거 감독의 완벽한 전술과 교체가 빛났던 경기였다. 벵거는 안첼로티의 선수비 후역습 패턴을 완벽히 읽어낸 듯 보였고 다소 힘겨울 거라 예상했던 미드필드에서도 확실히 우위에 있었다. 아스날의 첫번째 교체였던 '에보우에 out, 월콧 in'카드는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전반부터 아스날의 공격을 막는데 체력을 너무 많이 소진한 듯한 밀란은 후반 중반이 지나자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이에 월콧은 특유의 빠른발로 밀란의 측면을 계속해서 괴롭히며 쐐기골을 만들어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유독 프리미어리그 팀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왔던 세리에A의 강호들. 이중 유일하게 이탈리아 클럽의 자존심을 지켜왔던 AC밀란이었지만 그들의 경험은 젊음과 패기로 똘똘 뭉친 아스날의 빠른 경기 운영에 허무하게 깨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패배로 인해 밀란은 한가지를 확실히 얻은 듯하다. 그건 바로 세대교체가 아닐까.
이제 더 이상 AC밀란의 파올로 말디니와 필리포 인자기의 경험을 노련함이라고 내세우기엔 너무 노쇠한 것은 아닐지. 적어도 챔피언스리그에서 만큼은 자신만만했던 밀란도 안타깝지만 경험이 스피드와 반비례한다는 사실은 분명 인정해야 할 거 같다. 결국 밀란은 오늘 경기를 통해 자신들이 보완해야 할 점을 확실하게 알게 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사커라인 이창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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