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12월 4일은 축구 선수들과 팬들에게 있어 '꿈의 무대'로 불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 새로운 획이 그어진 역사적인 날이었다. 바로 AC 밀란의 공격수 필리포 인자기가 자신의 대회 통산 63호골을 터뜨리며 게르트 뮐러(전 바이에른 뮌헨)라는 전설적 인물의 이름을 '득점왕' 자리에서 끌어 내린 날이기 때문이다.
인자기는 경기 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역사적 성취에 큰 기쁨을 느낀다. 더불어 내가 뛰었던 모든 팀과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답하며 겸손함을 보였다. 사실 이는 정말로, 너무나도 완벽하게 인자기다운 소감이었다. 위치 선정 능력을 빼면 시체라는 평가를 듣는 인자기의 활동 특성을 감안했을 때, 자신을 위해 수많은 기회를 내준 그의 동료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대기록 작성은 그의 말대로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축구는 11명의 뛰는 경기이지만 이 중에서도 언론과 팬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한 연구에서는 상위 10%의 스타 선수들이 축구판에서 생산되는 90%의 컨텐츠를 만들어 낸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을 만큼 우리는 화려한 기량과 지명도를 가진 몇몇 특정 인물들에게 열광한다. 그러나 주목받지 못하는 다수의 나머지 선수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스타 선수들 또한 그 존재의 의미를 찾기 힘든 무대가 바로 '11명이 뛰는' 축구판이다.
07/08 독일 분데스리가 전반기에서도 수많은 스타들이 팬들과 언론들의 관심을 받으며 화려한 플레이로 그라운드를 수 놓았다. 그러나 '빛'이 존재하는 곳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그림자'들이 더 빛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필자의 무지함으로 인해 이 명단에도 포함되지 못한 수많은 '그림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면서, 화려한 스타 선수들 못지 않은 활약을 펼친 10명의 그림자들을 만나보자.
10위 - 안드레아스 볼프(25, 뉘른베르크 / 독일, DF)
지난 시즌 45년 만에 DFB 포칼을 쟁취하며 실로 오래간만에 어깨에 힘을 줬던 뉘른베르크는 올시즌 소포모어 징크스를 절감하며 매경기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뉘른베르크 수비의 핵심인 중앙 수비수 안드레아스 볼프는 이러한 2년차 징크스 따위는 자신과 관계 없는 이야기라는 듯 연일 맹활약을 펼치며 벤치의 한가닥 위안이 되고 있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지난 시즌의 철통 같은 수비력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는 뉘른베르크에서 볼프의 고군분투는 후반기 대도약을 위한 필요조건이자 최후의 보루다. 타지키스탄 출신으로 부모를 따라 1990년 독일로 이주해 축구를 배운 볼프는 거친 몸싸움과 상대 공격수들을 질리게 하는 대인방어가 일품인 선수로 올시즌에는 일대일 상황에서의 침착함도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지난 시즌 총 14장의 경고 딱지를 닥치는대로 수집해 리그 선두 자리를 점령한 볼프는 올시즌 전반기 단 4장의 경고를 받는 데 그치며 이 부문에서도 장족의 발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공격적인 성향도 자신의 일부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는 볼프는 현재까지 통산 33회의 경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부문 역대 1위인 슈테판 에펜베르크(111회)의 기록에 도전할 만한 가장 유력한 후보임에 틀림 없다.
9위 - 카이 뷔로프(21, 한자 로스톡 / 독일, 미드필더)
올시즌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에네르기 코트부스와 함께 동독 축구를 대변하고 있는 한자 로스톡은 사실 우리에게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 클럽이다. 65년 창단해 상대적으로 그 역사가 짧은 로스톡은 통독 이후 내세울 성과라고 해봐야 95년 2부 리그 우승이 전부다. 그러나 클럽 역사가 일천하다고 해서 이 '해적 군단'을 거쳐간 선수들이 모두 별볼일 없는 선수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로스톡은 구 동독 시절 요하킴 슈라이히, 게르트 키셔, 토마스 돌 등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슈테판 바인리히, 올리버 뇌빌, 마르틴 막스, 세르게이 바바레즈, 카르스텐 얀커, 마르코 레머 등의 선수들이 스타로 발돋움하기 전 로스톡에서 북해를 바라보며 청운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이를 계승하는 이가 바로 전도유망한 미드필더 카이 뷔로프다.
로스톡 토박이인 뷔로프는 팬들로부터 "우리의 아이"라고 불릴 정도로 친밀함을 과시하고 있으며 2005년 2부 리그 무대를 통해 프로 세계에 데뷔했다. 올시즌 처음으로 1부 리그에 진출한 뷔로프는 공수 양면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으며 상대 선수들의 공을 뺏어오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뷔로프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의 사실은 언론 매체의 평점이 그 선수의 잠재력과 가능성까지 나타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독일 U-21 팀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뷔로프는 설사 로스톡이 그들에게 익숙한 2부 무대로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1부에 남아 더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뇌빌이나 바인리히, 그리고 막스처럼 말이다.
8위 - 플로리안 크링에(25, 독일 / 도르트문트, 미드필더)
팀에 씌워져 있던 산소 호흡기를 떼내며 자존심 회복을 벼르고 있는 도르트문트의 올시즌 전반기는 그야말로 '묻지마 롤러코스트'였다. 더 큰 문제는 선수들의 몸 상태까지 팀의 성적과 그 궤를 같이 했다는 것이다. 공수의 주축인 알렉산더 프라이와 세바스티안 켈은 사실상 전반기를 모두 날렸고 나머지 선수들 역시 부상이라는 공공의 적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래서 크링에와 같이 건강하고 꾸준하게 활약한 선수들은 더 눈에 띈다.
지속성 측면 뿐만 아니라 팀의 사정에 따라 여러 포지션에서 각각의 임무를 수행한 크링에는 무너져가는 도르트문트의 지붕을 떠받든 버팀목이었다. 지난 2003년 1부 리그 무대에 데뷔한 이후 꾸준히 시즌당 30경기 가량을 소화하고 있는 크링에는 올시즌도 이러한 미덕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또한 기량적인 측면에서도 한 단계 발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크링에는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의 관심을 받기도 하며 높아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도르트문트와의 재계약 협상에 도장을 찍은 크링에는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후반기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을 전망이다. 중앙 미드필더는 물론 측면 미드필더와 측면 수비수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크링에의 능력은 토마스 돌 감독에게 큰 힘이 될 것이며 올시즌은 선수 본인의 커리어에서도 중대한 전환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
7위 - 세르게이 바바레즈(36, 레버쿠젠 / 보스니아-헤르고체비나, 미드필더)
지난 2006년 레버쿠젠이 세르게이 바바레즈와의 2년 계약을 체결했을 때 많은 이들은 기대와 함께 적지 않은 우려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미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었던 영광의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선수였고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팀 개편을 꿈꾸고 있었던 레버쿠젠의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2년 계약이 끝나가는 현 시점, 바바레즈에 대한 인식은 180도 달라졌다. 바이 아레나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1년 만이라도 더..."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예전에 비하면 스피드와 체력, 높이에서 모두 둔해진 느낌을 주지만 바바레즈의 번뜩이는 축구 센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넓은 시야와 군더더기없는 발재간을 무기로 레버쿠젠의 역동적인 젊은 선수들에게 쉴새없이 기회를 배달하고 있다.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그 기를 몰래 뺏어 먹는 듯한 바바레즈의 올시즌은 그야말로 회춘이요, 두 아빠의 청춘이다.
물론 바바레즈는 당초 레버쿠젠이 그를 영입한 목적, 즉 젊다 못해 어린 선수들을 이끄는 경험 많은 리더 역할에서도 모법 답안지를 내놓고 있다. 여기에 어린 선수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다혈질적인 성격과 상대 선수들의 경고를 유도하는 '기가 막힌' 헐리웃 액션은 바바레즈라는 캐릭터를 더욱 특별하게 해준다. '영원한 클래스' 바바레즈를 아카데미로!
6위 - 하이코 베스터만(24, 샬케 / 독일, 수비수)
마르셀로 보르돈이 슈투트가르트를 떠나 이 탄광촌으로 이주한 이후 샬케의 수비진은 언제나 견고했다. 그러나 올시즌은 그야말로 데프콘의 연속이었다. 뉴 웸블리를 침묵 속으로 빠뜨린 크리스티안 판더는 부상으로 인해 동료들보다는 간호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경험 많은 수비수 믈라덴 크르슈타이치는 부상에 이은 슬럼프에서 헤어나올 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샬케가 여전히 강력한 수비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올시즌을 앞두고 입단한 하이코 베스터만의 '만능 땜질' 덕이다. 빌레펠트 시절부터 중앙 수비와 오른쪽 풀백을 겸하며 만능 수비수의 자질을 보였던 베스터만은 판더의 부상으로 인해 보직을 왼쪽으로 변경한 이후에도 좋은 활약상을 선보이며 미르코 슬롬카 감독의 신임을 듬뿍 얻었다. 경고(1회)보다 더 많은 골(2골)을 넣는 수비수를 찾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다.
아마 유로 2008을 앞두고 있는 요하킴 뢰브 독일 대표팀 감독은 수비진의 모든 포지션에서 준수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베스터만의 활용성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빌레펠트를 떠나 샬케라는 '전국구 강호'에 합류한 베스터만에게도 자신의 기량을 대표팀에서 만개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5위 - 다비트 야롤림(28, 함부르크 / 체코, 미드필더)
올시즌 내내 함부르크를 몰아친 것은 바로 팀의 에이스 라파엘 반 더 바르트가 몰고 온 태풍이었다. 실제로 반 더 바르트는 그라운드에서의 활약과 그라운드 밖에서의 이적설로 함부르크 지역 언론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다비트 야롤림이라는 든든한 보디가드가 없었다면 VDV가 맘 놓고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야롤림은 97년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한 이후 뉘른베르크와 함부르크를 거치며 독일 무대 10년차에 접어든 베테랑 미드필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롤림은 이때까지 언론이나 팬들의 화려한 조명을 받아본 기억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야롤림은 뜯어보면 뜯어볼 수록 은근한 매력이 있는 선수로 올시즌 함부르크의 상승세에 있어 반드시 언급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얼핏 보면 전형적인 동유럽 선수 같지만 야롤림은 빠른 스피드와 공을 다루는 기술이 매우 뛰어난 선수다. 야롤림은 남미 선수들처럼 1-2명의 수비수 정도는 쉽게 제치는 현란함이 아닌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순간적인 변형으로 승부하는 선수다. 야롤림은 상대 눈을 어지럽히는 헛다리짚기보다 재치 있는 발동작 하나가 더 효율적인 때가 있다는 것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강인한 승부 근성과 체력, 그리고 올시즌 들어 일취월장한 패싱력까지 앞세운 야롤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전반기 함부르크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다. 앞으로 함부르크는 반 더 바르트 없이 사는 법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야롤림이 건재하다면 그 타격이 심각할 것 같지는 않다.
4위 - 마르쿠스 밀러(25, 칼스루헤 / 독일, 골키퍼)
현 시점까지라는 전제라면 올시즌 분데스리가 최고의 이변은 칼스루헤의 돌풍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개막을 앞두고 지난 시즌 2부 리그 챔피언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지만 칼스루헤는 탄탄한 조직력과 타마스 하이날이라는 걸출한 패서를 앞세워 성공적인 1부 리그 재진입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칼스루헤의 성공을 분석하며 그 시선을 오롯이 하이날이라는 플레이메이커에 집중하는 것은 팀의 주전 골키퍼 마르쿠스 밀러에 대한 중대한 실례다.
밀러의 이름이 독일 언론에 부각된 것은 아마도 04/05 시즌 DFB 포칼 마인츠전이 시초일 것이다. 밀러는 이 경기 승부차기에서 마인츠의 1,2,3번 키커의 페널티를 모두 막아내며 승부를 결정짓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 후 2부 무대에서 착실히 실력을 가다듬은 밀러는 지난 시즌이 끝날 무렵 이미 '2부 리그 최고의 골키퍼'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고 있었으며 올시즌에는 그 타이틀의 숫자를 2에서 1로 바꿀 채비를 모두 마쳤다.
강인한 승부 근성, 수비선을 직접 조율하는 지휘력, 돋보이는 판단력을 이용한 빼어난 방어력, 그리고 칼스루헤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것까지 바이에른 뮌헨의 명수문장 올리버 칸을 빼다 박은 밀러는 시즌 중 무릎 십자 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수술 대신 물리 치료를 통한 회복을 선택해 6개월의 공백 기간을 단 40일로 줄이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바이에른 뮌헨이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 예정인 칸의 후계자로 밀러를 지목하고 거금을 투자한다고 해도 놀라지는 마시라.
한 가지 재밌는 에피소드. 밀러는 지난 7라운드 프랑크푸르트와의 경기 이후 팀 동료 브래들리 카넬의 플레이에 대한 불만을 품고 설전을 벌였다. 그 장면에서 감정이 격해진 밀러는 브래들리의 멱살을 잡고 메이웨더 주니어의 카운터를 연상케 하는 펀치를 교환하는 헤프닝을 일으켜 또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그 경기는 1-0으로 칼스루헤가 승리한 경기였다. 정말 올리버 칸과 닮았다.
3위 - 다니엘 옌센(28, 브레멘 / 덴마크, 미드필더)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브레멘의 강력한 공격 축구는 바로 허리에서의 원활한 운동력에 기반한다. '마법사' 디에구, '살림꾼' 토어스텐 프링스, '금발의 발락' 팀 보로프스키, '캡틴' 프랑크 바우만 등 그 이름값 자체도 분데스리가 최강이다. 그러나 디에구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선수들은 올시즌 전반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름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상황에서 토마스 샤프 감독에게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바로 '만년 백업 멤버' 다니엘 옌센이었다.
지난 2004년 레알 무르시아에서 브레멘으로 합류한 옌센은 브레멘의 두터운 미드필드진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후보 선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프링스와 보로프스키가 부상으로 연쇄이탈하자 옌센의 비중은 커졌고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공수를 조율하고 든든한 수비력으로 디에구의 창의성을 담보하고 있는 옌센은 모르덴 올센 덴마크 감독으로부터 "덴마크의 피를로"라는 극찬까지 들었다. 글쎄,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어쩌면 샤프 감독은 고개를 끄덕거릴지도.
2008년 6월을 끝으로 브레멘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옌센은 올시즌의 맹활약을 통해 운신의 폭을 넓힌 상황이다. 분명 올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브레멘은 옌센과의 재계약 협상에 적극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Show me the Money!'를 외치며 고자세로 나오고 있는 옌센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올시즌 분데스리가 최고의 인생역전 주인공이다.
2위 - 시몬 롤페스(25, 레버쿠젠 / 독일, 미드필더)
독일 대표팀에서 미카엘 발락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그는 팀의 주장일 뿐만 아니라 전술의 구심점이며 상징이기도 하다. 때문에 독일 언론들은 언제나 새로운 발락을 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올시즌 언론의 레이더망에 잡힌 인재가 있으니 바로 그가 레버쿠젠의 다재다능한 미드필더 시몬 롤페스다.
'미니 발락'으로 불리는 롤페스는 실제로 발락과 많이 닮은 선수다. 수준급 득점력을 비롯한 공수 양면에서 다양한 재주를 갖췄다는 것이 그렇고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안정된 볼 배급 능력과 키핑력을 가졌다는 것도 그렇다. 또한 발락과 같은 189cm의 신장에 공중볼에 장점을 보인다는 것과 레버쿠젠에서 활약한다는 것도 발락과 롤페스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빠뜨리지 않는 단골메뉴다.
지난 2005년 알레만니아 아헨에서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롤페스는 최근 세 시즌간 1부 무대에서 꾸준히 경험을 쌓으며 급격한 기량 향상을 이뤄내고 있다는 평가다. 또한 발락이 부상으로 빠진 시기에 독일 대표팀에서도 꾸준히 중용되며 뢰브 감독의 신임을 쌓았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이상 롤페스는 유로 2008로 향하는 루프트한자에 탑승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부터 전 세계를 주목시키는 요즘의 선수들과는 다르게 발락은 20대 중후반까지 꾸준히 기량을 향상시키며 성공을 이룬 선수다. 아마도 독일 국민들은 롤페스 역시 이러한 발락의 뒤를 따라가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25세 당시의 발락과 현재의 롤페스를 비교해 보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1위 - 스타니슬라프 세스탁(25, 보쿰 / 슬로바키아, 공격수)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빛나는 테오파니스 게카스를 레버쿠젠에 매각한 이후 보쿰의 벤치는 고민에 빠졌다. 지난 시즌 보쿰을 홀로 끌고간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리스 신'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그러나 이 문제는 결과론적으로 슈테판 쿤츠 단장의 유럽 횡단기를 통해 말끔히 해결됐다. 쿤츠는 여름 이적 시장이 다가오자 쓸만한 선수들을 구하기 위해 '고유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몰아 8개 국가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발품의 결실이 바로 올시즌 분데스리가 최고의 '히트 상품' 스타니슬라프 세스탁이다.
슬로바키아 리그의 MSK 칠리나에서 활약했던 세스탁은 지난 시즌 15골을 기록하며 팀을 리그 우승을 이끈 공격수였다. 그러나 사실상 이 공격수가 바깥 세계에 알려진 바는 거의 없었다. 어쩌면 보쿰의 세스탁 영입은 그들이 거액의 이적료를 투자할 수 없는 가난한 구단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K-리그에서도 간간히 볼 수 있는 이적료인 75만 유로(한화 약 10억 원)에 독일땅을 밟은 세스탁은 불과 반 시즌만에 팬들의 보물이자 보쿰의 '연타석 만루홈런'이 됐다.
공격수지만 부지런한 움직임과 뛰어난 축구 지능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는 물론 간간히 플레이메이커의 역할까지도 수행하는 세스탁은 순도 높은 골 결정력과 팀 플레이에 치중하는 비이기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게카스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냈다. 전반기 17경기에 모두 출장한 세스탁은 8골을 뽑아냈을 뿐 아니라 7개의 어시스트까지 곁들이며 리그 공격 포인트 순위에서 디에구(브레멘)에 이은 리그 공동 2위에 랭크돼 있다. 분명 보쿰은 쿤츠 단장이 여름에 쓴 기름값을 세스탁 하나로 모두 만회했음에 틀림없다.
세스탁의 영입이 얼마나 효율적인 선택이었는지 의구심을 품는 이들을 위한 자료. 몸값이 75만 유로였던 세스탁은 자신의 약 10배 몸값이었던 치프리안 마리카(슈투트가르트, 700만 유로)보다 4배나 많은 골을 뽑아냈으며 7.7배 였던 모하메드 지단(함부르크, 580만 유로)와 비교하면 8배나 많이 넣었다. 또한 16배의 몸값이었던 미로슬라프 클로제(바이에른, 1,200만 유로)가 기록한 공격 포인트와 동일한 성적을 냈으며 10배의 몸값이었던 카를로스 알베르투(브레멘, 780만 유로)보다는 무려 33.5배나 더 많은 시간을 뛰었다.
- 사커라인 김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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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기는 경기 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역사적 성취에 큰 기쁨을 느낀다. 더불어 내가 뛰었던 모든 팀과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답하며 겸손함을 보였다. 사실 이는 정말로, 너무나도 완벽하게 인자기다운 소감이었다. 위치 선정 능력을 빼면 시체라는 평가를 듣는 인자기의 활동 특성을 감안했을 때, 자신을 위해 수많은 기회를 내준 그의 동료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대기록 작성은 그의 말대로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축구는 11명의 뛰는 경기이지만 이 중에서도 언론과 팬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한 연구에서는 상위 10%의 스타 선수들이 축구판에서 생산되는 90%의 컨텐츠를 만들어 낸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을 만큼 우리는 화려한 기량과 지명도를 가진 몇몇 특정 인물들에게 열광한다. 그러나 주목받지 못하는 다수의 나머지 선수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스타 선수들 또한 그 존재의 의미를 찾기 힘든 무대가 바로 '11명이 뛰는' 축구판이다.
07/08 독일 분데스리가 전반기에서도 수많은 스타들이 팬들과 언론들의 관심을 받으며 화려한 플레이로 그라운드를 수 놓았다. 그러나 '빛'이 존재하는 곳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그림자'들이 더 빛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필자의 무지함으로 인해 이 명단에도 포함되지 못한 수많은 '그림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면서, 화려한 스타 선수들 못지 않은 활약을 펼친 10명의 그림자들을 만나보자.
10위 - 안드레아스 볼프(25, 뉘른베르크 / 독일, DF)
지난 시즌 45년 만에 DFB 포칼을 쟁취하며 실로 오래간만에 어깨에 힘을 줬던 뉘른베르크는 올시즌 소포모어 징크스를 절감하며 매경기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뉘른베르크 수비의 핵심인 중앙 수비수 안드레아스 볼프는 이러한 2년차 징크스 따위는 자신과 관계 없는 이야기라는 듯 연일 맹활약을 펼치며 벤치의 한가닥 위안이 되고 있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지난 시즌의 철통 같은 수비력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는 뉘른베르크에서 볼프의 고군분투는 후반기 대도약을 위한 필요조건이자 최후의 보루다. 타지키스탄 출신으로 부모를 따라 1990년 독일로 이주해 축구를 배운 볼프는 거친 몸싸움과 상대 공격수들을 질리게 하는 대인방어가 일품인 선수로 올시즌에는 일대일 상황에서의 침착함도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지난 시즌 총 14장의 경고 딱지를 닥치는대로 수집해 리그 선두 자리를 점령한 볼프는 올시즌 전반기 단 4장의 경고를 받는 데 그치며 이 부문에서도 장족의 발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공격적인 성향도 자신의 일부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는 볼프는 현재까지 통산 33회의 경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부문 역대 1위인 슈테판 에펜베르크(111회)의 기록에 도전할 만한 가장 유력한 후보임에 틀림 없다.
9위 - 카이 뷔로프(21, 한자 로스톡 / 독일, 미드필더)
올시즌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에네르기 코트부스와 함께 동독 축구를 대변하고 있는 한자 로스톡은 사실 우리에게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 클럽이다. 65년 창단해 상대적으로 그 역사가 짧은 로스톡은 통독 이후 내세울 성과라고 해봐야 95년 2부 리그 우승이 전부다. 그러나 클럽 역사가 일천하다고 해서 이 '해적 군단'을 거쳐간 선수들이 모두 별볼일 없는 선수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로스톡은 구 동독 시절 요하킴 슈라이히, 게르트 키셔, 토마스 돌 등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슈테판 바인리히, 올리버 뇌빌, 마르틴 막스, 세르게이 바바레즈, 카르스텐 얀커, 마르코 레머 등의 선수들이 스타로 발돋움하기 전 로스톡에서 북해를 바라보며 청운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이를 계승하는 이가 바로 전도유망한 미드필더 카이 뷔로프다.
로스톡 토박이인 뷔로프는 팬들로부터 "우리의 아이"라고 불릴 정도로 친밀함을 과시하고 있으며 2005년 2부 리그 무대를 통해 프로 세계에 데뷔했다. 올시즌 처음으로 1부 리그에 진출한 뷔로프는 공수 양면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으며 상대 선수들의 공을 뺏어오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뷔로프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의 사실은 언론 매체의 평점이 그 선수의 잠재력과 가능성까지 나타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독일 U-21 팀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뷔로프는 설사 로스톡이 그들에게 익숙한 2부 무대로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1부에 남아 더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뇌빌이나 바인리히, 그리고 막스처럼 말이다.
8위 - 플로리안 크링에(25, 독일 / 도르트문트, 미드필더)
팀에 씌워져 있던 산소 호흡기를 떼내며 자존심 회복을 벼르고 있는 도르트문트의 올시즌 전반기는 그야말로 '묻지마 롤러코스트'였다. 더 큰 문제는 선수들의 몸 상태까지 팀의 성적과 그 궤를 같이 했다는 것이다. 공수의 주축인 알렉산더 프라이와 세바스티안 켈은 사실상 전반기를 모두 날렸고 나머지 선수들 역시 부상이라는 공공의 적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래서 크링에와 같이 건강하고 꾸준하게 활약한 선수들은 더 눈에 띈다.
지속성 측면 뿐만 아니라 팀의 사정에 따라 여러 포지션에서 각각의 임무를 수행한 크링에는 무너져가는 도르트문트의 지붕을 떠받든 버팀목이었다. 지난 2003년 1부 리그 무대에 데뷔한 이후 꾸준히 시즌당 30경기 가량을 소화하고 있는 크링에는 올시즌도 이러한 미덕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또한 기량적인 측면에서도 한 단계 발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크링에는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의 관심을 받기도 하며 높아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도르트문트와의 재계약 협상에 도장을 찍은 크링에는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후반기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을 전망이다. 중앙 미드필더는 물론 측면 미드필더와 측면 수비수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크링에의 능력은 토마스 돌 감독에게 큰 힘이 될 것이며 올시즌은 선수 본인의 커리어에서도 중대한 전환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
7위 - 세르게이 바바레즈(36, 레버쿠젠 / 보스니아-헤르고체비나, 미드필더)
지난 2006년 레버쿠젠이 세르게이 바바레즈와의 2년 계약을 체결했을 때 많은 이들은 기대와 함께 적지 않은 우려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미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었던 영광의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선수였고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팀 개편을 꿈꾸고 있었던 레버쿠젠의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2년 계약이 끝나가는 현 시점, 바바레즈에 대한 인식은 180도 달라졌다. 바이 아레나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1년 만이라도 더..."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예전에 비하면 스피드와 체력, 높이에서 모두 둔해진 느낌을 주지만 바바레즈의 번뜩이는 축구 센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넓은 시야와 군더더기없는 발재간을 무기로 레버쿠젠의 역동적인 젊은 선수들에게 쉴새없이 기회를 배달하고 있다.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그 기를 몰래 뺏어 먹는 듯한 바바레즈의 올시즌은 그야말로 회춘이요, 두 아빠의 청춘이다.
물론 바바레즈는 당초 레버쿠젠이 그를 영입한 목적, 즉 젊다 못해 어린 선수들을 이끄는 경험 많은 리더 역할에서도 모법 답안지를 내놓고 있다. 여기에 어린 선수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다혈질적인 성격과 상대 선수들의 경고를 유도하는 '기가 막힌' 헐리웃 액션은 바바레즈라는 캐릭터를 더욱 특별하게 해준다. '영원한 클래스' 바바레즈를 아카데미로!
6위 - 하이코 베스터만(24, 샬케 / 독일, 수비수)
마르셀로 보르돈이 슈투트가르트를 떠나 이 탄광촌으로 이주한 이후 샬케의 수비진은 언제나 견고했다. 그러나 올시즌은 그야말로 데프콘의 연속이었다. 뉴 웸블리를 침묵 속으로 빠뜨린 크리스티안 판더는 부상으로 인해 동료들보다는 간호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경험 많은 수비수 믈라덴 크르슈타이치는 부상에 이은 슬럼프에서 헤어나올 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샬케가 여전히 강력한 수비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올시즌을 앞두고 입단한 하이코 베스터만의 '만능 땜질' 덕이다. 빌레펠트 시절부터 중앙 수비와 오른쪽 풀백을 겸하며 만능 수비수의 자질을 보였던 베스터만은 판더의 부상으로 인해 보직을 왼쪽으로 변경한 이후에도 좋은 활약상을 선보이며 미르코 슬롬카 감독의 신임을 듬뿍 얻었다. 경고(1회)보다 더 많은 골(2골)을 넣는 수비수를 찾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다.
아마 유로 2008을 앞두고 있는 요하킴 뢰브 독일 대표팀 감독은 수비진의 모든 포지션에서 준수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베스터만의 활용성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빌레펠트를 떠나 샬케라는 '전국구 강호'에 합류한 베스터만에게도 자신의 기량을 대표팀에서 만개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5위 - 다비트 야롤림(28, 함부르크 / 체코, 미드필더)
올시즌 내내 함부르크를 몰아친 것은 바로 팀의 에이스 라파엘 반 더 바르트가 몰고 온 태풍이었다. 실제로 반 더 바르트는 그라운드에서의 활약과 그라운드 밖에서의 이적설로 함부르크 지역 언론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다비트 야롤림이라는 든든한 보디가드가 없었다면 VDV가 맘 놓고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야롤림은 97년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한 이후 뉘른베르크와 함부르크를 거치며 독일 무대 10년차에 접어든 베테랑 미드필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롤림은 이때까지 언론이나 팬들의 화려한 조명을 받아본 기억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야롤림은 뜯어보면 뜯어볼 수록 은근한 매력이 있는 선수로 올시즌 함부르크의 상승세에 있어 반드시 언급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얼핏 보면 전형적인 동유럽 선수 같지만 야롤림은 빠른 스피드와 공을 다루는 기술이 매우 뛰어난 선수다. 야롤림은 남미 선수들처럼 1-2명의 수비수 정도는 쉽게 제치는 현란함이 아닌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순간적인 변형으로 승부하는 선수다. 야롤림은 상대 눈을 어지럽히는 헛다리짚기보다 재치 있는 발동작 하나가 더 효율적인 때가 있다는 것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강인한 승부 근성과 체력, 그리고 올시즌 들어 일취월장한 패싱력까지 앞세운 야롤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전반기 함부르크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다. 앞으로 함부르크는 반 더 바르트 없이 사는 법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야롤림이 건재하다면 그 타격이 심각할 것 같지는 않다.
4위 - 마르쿠스 밀러(25, 칼스루헤 / 독일, 골키퍼)
현 시점까지라는 전제라면 올시즌 분데스리가 최고의 이변은 칼스루헤의 돌풍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개막을 앞두고 지난 시즌 2부 리그 챔피언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지만 칼스루헤는 탄탄한 조직력과 타마스 하이날이라는 걸출한 패서를 앞세워 성공적인 1부 리그 재진입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칼스루헤의 성공을 분석하며 그 시선을 오롯이 하이날이라는 플레이메이커에 집중하는 것은 팀의 주전 골키퍼 마르쿠스 밀러에 대한 중대한 실례다.
밀러의 이름이 독일 언론에 부각된 것은 아마도 04/05 시즌 DFB 포칼 마인츠전이 시초일 것이다. 밀러는 이 경기 승부차기에서 마인츠의 1,2,3번 키커의 페널티를 모두 막아내며 승부를 결정짓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 후 2부 무대에서 착실히 실력을 가다듬은 밀러는 지난 시즌이 끝날 무렵 이미 '2부 리그 최고의 골키퍼'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고 있었으며 올시즌에는 그 타이틀의 숫자를 2에서 1로 바꿀 채비를 모두 마쳤다.
강인한 승부 근성, 수비선을 직접 조율하는 지휘력, 돋보이는 판단력을 이용한 빼어난 방어력, 그리고 칼스루헤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것까지 바이에른 뮌헨의 명수문장 올리버 칸을 빼다 박은 밀러는 시즌 중 무릎 십자 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수술 대신 물리 치료를 통한 회복을 선택해 6개월의 공백 기간을 단 40일로 줄이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바이에른 뮌헨이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 예정인 칸의 후계자로 밀러를 지목하고 거금을 투자한다고 해도 놀라지는 마시라.
한 가지 재밌는 에피소드. 밀러는 지난 7라운드 프랑크푸르트와의 경기 이후 팀 동료 브래들리 카넬의 플레이에 대한 불만을 품고 설전을 벌였다. 그 장면에서 감정이 격해진 밀러는 브래들리의 멱살을 잡고 메이웨더 주니어의 카운터를 연상케 하는 펀치를 교환하는 헤프닝을 일으켜 또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그 경기는 1-0으로 칼스루헤가 승리한 경기였다. 정말 올리버 칸과 닮았다.
3위 - 다니엘 옌센(28, 브레멘 / 덴마크, 미드필더)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브레멘의 강력한 공격 축구는 바로 허리에서의 원활한 운동력에 기반한다. '마법사' 디에구, '살림꾼' 토어스텐 프링스, '금발의 발락' 팀 보로프스키, '캡틴' 프랑크 바우만 등 그 이름값 자체도 분데스리가 최강이다. 그러나 디에구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선수들은 올시즌 전반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름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상황에서 토마스 샤프 감독에게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바로 '만년 백업 멤버' 다니엘 옌센이었다.
지난 2004년 레알 무르시아에서 브레멘으로 합류한 옌센은 브레멘의 두터운 미드필드진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후보 선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프링스와 보로프스키가 부상으로 연쇄이탈하자 옌센의 비중은 커졌고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공수를 조율하고 든든한 수비력으로 디에구의 창의성을 담보하고 있는 옌센은 모르덴 올센 덴마크 감독으로부터 "덴마크의 피를로"라는 극찬까지 들었다. 글쎄,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어쩌면 샤프 감독은 고개를 끄덕거릴지도.
2008년 6월을 끝으로 브레멘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옌센은 올시즌의 맹활약을 통해 운신의 폭을 넓힌 상황이다. 분명 올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브레멘은 옌센과의 재계약 협상에 적극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Show me the Money!'를 외치며 고자세로 나오고 있는 옌센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올시즌 분데스리가 최고의 인생역전 주인공이다.
2위 - 시몬 롤페스(25, 레버쿠젠 / 독일, 미드필더)
독일 대표팀에서 미카엘 발락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그는 팀의 주장일 뿐만 아니라 전술의 구심점이며 상징이기도 하다. 때문에 독일 언론들은 언제나 새로운 발락을 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올시즌 언론의 레이더망에 잡힌 인재가 있으니 바로 그가 레버쿠젠의 다재다능한 미드필더 시몬 롤페스다.
'미니 발락'으로 불리는 롤페스는 실제로 발락과 많이 닮은 선수다. 수준급 득점력을 비롯한 공수 양면에서 다양한 재주를 갖췄다는 것이 그렇고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안정된 볼 배급 능력과 키핑력을 가졌다는 것도 그렇다. 또한 발락과 같은 189cm의 신장에 공중볼에 장점을 보인다는 것과 레버쿠젠에서 활약한다는 것도 발락과 롤페스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빠뜨리지 않는 단골메뉴다.
지난 2005년 알레만니아 아헨에서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롤페스는 최근 세 시즌간 1부 무대에서 꾸준히 경험을 쌓으며 급격한 기량 향상을 이뤄내고 있다는 평가다. 또한 발락이 부상으로 빠진 시기에 독일 대표팀에서도 꾸준히 중용되며 뢰브 감독의 신임을 쌓았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이상 롤페스는 유로 2008로 향하는 루프트한자에 탑승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부터 전 세계를 주목시키는 요즘의 선수들과는 다르게 발락은 20대 중후반까지 꾸준히 기량을 향상시키며 성공을 이룬 선수다. 아마도 독일 국민들은 롤페스 역시 이러한 발락의 뒤를 따라가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25세 당시의 발락과 현재의 롤페스를 비교해 보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1위 - 스타니슬라프 세스탁(25, 보쿰 / 슬로바키아, 공격수)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빛나는 테오파니스 게카스를 레버쿠젠에 매각한 이후 보쿰의 벤치는 고민에 빠졌다. 지난 시즌 보쿰을 홀로 끌고간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리스 신'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그러나 이 문제는 결과론적으로 슈테판 쿤츠 단장의 유럽 횡단기를 통해 말끔히 해결됐다. 쿤츠는 여름 이적 시장이 다가오자 쓸만한 선수들을 구하기 위해 '고유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몰아 8개 국가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발품의 결실이 바로 올시즌 분데스리가 최고의 '히트 상품' 스타니슬라프 세스탁이다.
슬로바키아 리그의 MSK 칠리나에서 활약했던 세스탁은 지난 시즌 15골을 기록하며 팀을 리그 우승을 이끈 공격수였다. 그러나 사실상 이 공격수가 바깥 세계에 알려진 바는 거의 없었다. 어쩌면 보쿰의 세스탁 영입은 그들이 거액의 이적료를 투자할 수 없는 가난한 구단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K-리그에서도 간간히 볼 수 있는 이적료인 75만 유로(한화 약 10억 원)에 독일땅을 밟은 세스탁은 불과 반 시즌만에 팬들의 보물이자 보쿰의 '연타석 만루홈런'이 됐다.
공격수지만 부지런한 움직임과 뛰어난 축구 지능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는 물론 간간히 플레이메이커의 역할까지도 수행하는 세스탁은 순도 높은 골 결정력과 팀 플레이에 치중하는 비이기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게카스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냈다. 전반기 17경기에 모두 출장한 세스탁은 8골을 뽑아냈을 뿐 아니라 7개의 어시스트까지 곁들이며 리그 공격 포인트 순위에서 디에구(브레멘)에 이은 리그 공동 2위에 랭크돼 있다. 분명 보쿰은 쿤츠 단장이 여름에 쓴 기름값을 세스탁 하나로 모두 만회했음에 틀림없다.
세스탁의 영입이 얼마나 효율적인 선택이었는지 의구심을 품는 이들을 위한 자료. 몸값이 75만 유로였던 세스탁은 자신의 약 10배 몸값이었던 치프리안 마리카(슈투트가르트, 700만 유로)보다 4배나 많은 골을 뽑아냈으며 7.7배 였던 모하메드 지단(함부르크, 580만 유로)와 비교하면 8배나 많이 넣었다. 또한 16배의 몸값이었던 미로슬라프 클로제(바이에른, 1,200만 유로)가 기록한 공격 포인트와 동일한 성적을 냈으며 10배의 몸값이었던 카를로스 알베르투(브레멘, 780만 유로)보다는 무려 33.5배나 더 많은 시간을 뛰었다.
- 사커라인 김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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