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12월 4일은 축구 선수들과 팬들에게 있어 '꿈의 무대'로 불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 새로운 획이 그어진 역사적인 날이었다. 바로 AC 밀란의 공격수 필리포 인자기가 자신의 대회 통산 63호골을 터뜨리며 게르트 뮐러(전 바이에른 뮌헨)라는 전설적 인물의 이름을 '득점왕' 자리에서 끌어 내린 날이기 때문이다.

인자기는 경기 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역사적 성취에 큰 기쁨을 느낀다. 더불어 내가 뛰었던 모든 팀과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답하며 겸손함을 보였다. 사실 이는 정말로, 너무나도 완벽하게 인자기다운 소감이었다. 위치 선정 능력을 빼면 시체라는 평가를 듣는 인자기의 활동 특성을 감안했을 때, 자신을 위해 수많은 기회를 내준 그의 동료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대기록 작성은 그의 말대로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축구는 11명의 뛰는 경기이지만 이 중에서도 언론과 팬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한 연구에서는 상위 10%의 스타 선수들이 축구판에서 생산되는 90%의 컨텐츠를 만들어 낸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을 만큼 우리는 화려한 기량과 지명도를 가진 몇몇 특정 인물들에게 열광한다. 그러나 주목받지 못하는 다수의 나머지 선수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스타 선수들 또한 그 존재의 의미를 찾기 힘든 무대가 바로 '11명이 뛰는' 축구판이다.

07/08 독일 분데스리가 전반기에서도 수많은 스타들이 팬들과 언론들의 관심을 받으며 화려한 플레이로 그라운드를 수 놓았다. 그러나 '빛'이 존재하는 곳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그림자'들이 더 빛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필자의 무지함으로 인해 이 명단에도 포함되지 못한 수많은 '그림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면서, 화려한 스타 선수들 못지 않은 활약을 펼친 10명의 그림자들을 만나보자.



10위 - 안드레아스 볼프(25, 뉘른베르크 / 독일, DF)

지난 시즌 45년 만에 DFB 포칼을 쟁취하며 실로 오래간만에 어깨에 힘을 줬던 뉘른베르크는 올시즌 소포모어 징크스를 절감하며 매경기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뉘른베르크 수비의 핵심인 중앙 수비수 안드레아스 볼프는 이러한 2년차 징크스 따위는 자신과 관계 없는 이야기라는 듯 연일 맹활약을 펼치며 벤치의 한가닥 위안이 되고 있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지난 시즌의 철통 같은 수비력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는 뉘른베르크에서 볼프의 고군분투는 후반기 대도약을 위한 필요조건이자 최후의 보루다. 타지키스탄 출신으로 부모를 따라 1990년 독일로 이주해 축구를 배운 볼프는 거친 몸싸움과 상대 공격수들을 질리게 하는 대인방어가 일품인 선수로 올시즌에는 일대일 상황에서의 침착함도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지난 시즌 총 14장의 경고 딱지를 닥치는대로 수집해 리그 선두 자리를 점령한 볼프는 올시즌 전반기 단 4장의 경고를 받는 데 그치며 이 부문에서도 장족의 발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공격적인 성향도 자신의 일부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는 볼프는 현재까지 통산 33회의 경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부문 역대 1위인 슈테판 에펜베르크(111회)의 기록에 도전할 만한 가장 유력한 후보임에 틀림 없다.


9위 - 카이 뷔로프(21, 한자 로스톡 / 독일, 미드필더)

올시즌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에네르기 코트부스와 함께 동독 축구를 대변하고 있는 한자 로스톡은 사실 우리에게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 클럽이다. 65년 창단해 상대적으로 그 역사가 짧은 로스톡은 통독 이후 내세울 성과라고 해봐야 95년 2부 리그 우승이 전부다. 그러나 클럽 역사가 일천하다고 해서 이 '해적 군단'을 거쳐간 선수들이 모두 별볼일 없는 선수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로스톡은 구 동독 시절 요하킴 슈라이히, 게르트 키셔, 토마스 돌 등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슈테판 바인리히, 올리버 뇌빌, 마르틴 막스, 세르게이 바바레즈, 카르스텐 얀커, 마르코 레머 등의 선수들이 스타로 발돋움하기 전 로스톡에서 북해를 바라보며 청운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이를 계승하는 이가 바로 전도유망한 미드필더 카이 뷔로프다.

로스톡 토박이인 뷔로프는 팬들로부터 "우리의 아이"라고 불릴 정도로 친밀함을 과시하고 있으며 2005년 2부 리그 무대를 통해 프로 세계에 데뷔했다. 올시즌 처음으로 1부 리그에 진출한 뷔로프는 공수 양면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으며 상대 선수들의 공을 뺏어오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뷔로프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의 사실은 언론 매체의 평점이 그 선수의 잠재력과 가능성까지 나타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독일 U-21 팀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뷔로프는 설사 로스톡이 그들에게 익숙한 2부 무대로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1부에 남아 더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뇌빌이나 바인리히, 그리고 막스처럼 말이다.


8위 - 플로리안 크링에(25, 독일 / 도르트문트, 미드필더)

팀에 씌워져 있던 산소 호흡기를 떼내며 자존심 회복을 벼르고 있는 도르트문트의 올시즌 전반기는 그야말로 '묻지마 롤러코스트'였다. 더 큰 문제는 선수들의 몸 상태까지 팀의 성적과 그 궤를 같이 했다는 것이다. 공수의 주축인 알렉산더 프라이와 세바스티안 켈은 사실상 전반기를 모두 날렸고 나머지 선수들 역시 부상이라는 공공의 적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래서 크링에와 같이 건강하고 꾸준하게 활약한 선수들은 더 눈에 띈다.

지속성 측면 뿐만 아니라 팀의 사정에 따라 여러 포지션에서 각각의 임무를 수행한 크링에는 무너져가는 도르트문트의 지붕을 떠받든 버팀목이었다. 지난 2003년 1부 리그 무대에 데뷔한 이후 꾸준히 시즌당 30경기 가량을 소화하고 있는 크링에는 올시즌도 이러한 미덕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또한 기량적인 측면에서도 한 단계 발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크링에는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의 관심을 받기도 하며 높아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도르트문트와의 재계약 협상에 도장을 찍은 크링에는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후반기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을 전망이다. 중앙 미드필더는 물론 측면 미드필더와 측면 수비수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크링에의 능력은 토마스 돌 감독에게 큰 힘이 될 것이며 올시즌은 선수 본인의 커리어에서도 중대한 전환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


7위 - 세르게이 바바레즈(36, 레버쿠젠 / 보스니아-헤르고체비나, 미드필더)

지난 2006년 레버쿠젠이 세르게이 바바레즈와의 2년 계약을 체결했을 때 많은 이들은 기대와 함께 적지 않은 우려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미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었던 영광의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선수였고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팀 개편을 꿈꾸고 있었던 레버쿠젠의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2년 계약이 끝나가는 현 시점, 바바레즈에 대한 인식은 180도 달라졌다. 바이 아레나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1년 만이라도 더..."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예전에 비하면 스피드와 체력, 높이에서 모두 둔해진 느낌을 주지만 바바레즈의 번뜩이는 축구 센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넓은 시야와 군더더기없는 발재간을 무기로 레버쿠젠의 역동적인 젊은 선수들에게 쉴새없이 기회를 배달하고 있다.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그 기를 몰래 뺏어 먹는 듯한 바바레즈의 올시즌은 그야말로 회춘이요, 두 아빠의 청춘이다.

물론 바바레즈는 당초 레버쿠젠이 그를 영입한 목적, 즉 젊다 못해 어린 선수들을 이끄는 경험 많은 리더 역할에서도 모법 답안지를 내놓고 있다. 여기에 어린 선수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다혈질적인 성격과 상대 선수들의 경고를 유도하는 '기가 막힌' 헐리웃 액션은 바바레즈라는 캐릭터를 더욱 특별하게 해준다. '영원한 클래스' 바바레즈를 아카데미로!



6위 - 하이코 베스터만(24, 샬케 / 독일, 수비수)

마르셀로 보르돈이 슈투트가르트를 떠나 이 탄광촌으로 이주한 이후 샬케의 수비진은 언제나 견고했다. 그러나 올시즌은 그야말로 데프콘의 연속이었다. 뉴 웸블리를 침묵 속으로 빠뜨린 크리스티안 판더는 부상으로 인해 동료들보다는 간호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경험 많은 수비수 믈라덴 크르슈타이치는 부상에 이은 슬럼프에서 헤어나올 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샬케가 여전히 강력한 수비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올시즌을 앞두고 입단한 하이코 베스터만의 '만능 땜질' 덕이다. 빌레펠트 시절부터 중앙 수비와 오른쪽 풀백을 겸하며 만능 수비수의 자질을 보였던 베스터만은 판더의 부상으로 인해 보직을 왼쪽으로 변경한 이후에도 좋은 활약상을 선보이며 미르코 슬롬카 감독의 신임을 듬뿍 얻었다. 경고(1회)보다 더 많은 골(2골)을 넣는 수비수를 찾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다.

아마 유로 2008을 앞두고 있는 요하킴 뢰브 독일 대표팀 감독은 수비진의 모든 포지션에서 준수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베스터만의 활용성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빌레펠트를 떠나 샬케라는 '전국구 강호'에 합류한 베스터만에게도 자신의 기량을 대표팀에서 만개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5위 - 다비트 야롤림(28, 함부르크 / 체코, 미드필더)

올시즌 내내 함부르크를 몰아친 것은 바로 팀의 에이스 라파엘 반 더 바르트가 몰고 온 태풍이었다. 실제로 반 더 바르트는 그라운드에서의 활약과 그라운드 밖에서의 이적설로 함부르크 지역 언론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다비트 야롤림이라는 든든한 보디가드가 없었다면 VDV가 맘 놓고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야롤림은 97년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한 이후 뉘른베르크와 함부르크를 거치며 독일 무대 10년차에 접어든 베테랑 미드필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롤림은 이때까지 언론이나 팬들의 화려한 조명을 받아본 기억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야롤림은 뜯어보면 뜯어볼 수록 은근한 매력이 있는 선수로 올시즌 함부르크의 상승세에 있어 반드시 언급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얼핏 보면 전형적인 동유럽 선수 같지만 야롤림은 빠른 스피드와 공을 다루는 기술이 매우 뛰어난 선수다. 야롤림은 남미 선수들처럼 1-2명의 수비수 정도는 쉽게 제치는 현란함이 아닌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순간적인 변형으로 승부하는 선수다. 야롤림은 상대 눈을 어지럽히는 헛다리짚기보다 재치 있는 발동작 하나가 더 효율적인 때가 있다는 것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강인한 승부 근성과 체력, 그리고 올시즌 들어 일취월장한 패싱력까지 앞세운 야롤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전반기 함부르크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다. 앞으로 함부르크는 반 더 바르트 없이 사는 법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야롤림이 건재하다면 그 타격이 심각할 것 같지는 않다.



4위 - 마르쿠스 밀러(25, 칼스루헤 / 독일, 골키퍼)

현 시점까지라는 전제라면 올시즌 분데스리가 최고의 이변은 칼스루헤의 돌풍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개막을 앞두고 지난 시즌 2부 리그 챔피언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지만 칼스루헤는 탄탄한 조직력과 타마스 하이날이라는 걸출한 패서를 앞세워 성공적인 1부 리그 재진입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칼스루헤의 성공을 분석하며 그 시선을 오롯이 하이날이라는 플레이메이커에 집중하는 것은 팀의 주전 골키퍼 마르쿠스 밀러에 대한 중대한 실례다.

밀러의 이름이 독일 언론에 부각된 것은 아마도 04/05 시즌 DFB 포칼 마인츠전이 시초일 것이다. 밀러는 이 경기 승부차기에서 마인츠의 1,2,3번 키커의 페널티를 모두 막아내며 승부를 결정짓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 후 2부 무대에서 착실히 실력을 가다듬은 밀러는 지난 시즌이 끝날 무렵 이미 '2부 리그 최고의 골키퍼'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고 있었으며 올시즌에는 그 타이틀의 숫자를 2에서 1로 바꿀 채비를 모두 마쳤다.

강인한 승부 근성, 수비선을 직접 조율하는 지휘력, 돋보이는 판단력을 이용한 빼어난 방어력, 그리고 칼스루헤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것까지 바이에른 뮌헨의 명수문장 올리버 칸을 빼다 박은 밀러는 시즌 중 무릎 십자 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수술 대신 물리 치료를 통한 회복을 선택해 6개월의 공백 기간을 단 40일로 줄이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바이에른 뮌헨이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 예정인 칸의 후계자로 밀러를 지목하고 거금을 투자한다고 해도 놀라지는 마시라.

한 가지 재밌는 에피소드. 밀러는 지난 7라운드 프랑크푸르트와의 경기 이후 팀 동료 브래들리 카넬의 플레이에 대한 불만을 품고 설전을 벌였다. 그 장면에서 감정이 격해진 밀러는 브래들리의 멱살을 잡고 메이웨더 주니어의 카운터를 연상케 하는 펀치를 교환하는 헤프닝을 일으켜 또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그 경기는 1-0으로 칼스루헤가 승리한 경기였다. 정말 올리버 칸과 닮았다.


3위 - 다니엘 옌센(28, 브레멘 / 덴마크, 미드필더)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브레멘의 강력한 공격 축구는 바로 허리에서의 원활한 운동력에 기반한다. '마법사' 디에구, '살림꾼' 토어스텐 프링스, '금발의 발락' 팀 보로프스키, '캡틴' 프랑크 바우만 등 그 이름값 자체도 분데스리가 최강이다. 그러나 디에구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선수들은 올시즌 전반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름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상황에서 토마스 샤프 감독에게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바로 '만년 백업 멤버' 다니엘 옌센이었다.

지난 2004년 레알 무르시아에서 브레멘으로 합류한 옌센은 브레멘의 두터운 미드필드진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후보 선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프링스와 보로프스키가 부상으로 연쇄이탈하자 옌센의 비중은 커졌고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공수를 조율하고 든든한 수비력으로 디에구의 창의성을 담보하고 있는 옌센은 모르덴 올센 덴마크 감독으로부터 "덴마크의 피를로"라는 극찬까지 들었다. 글쎄,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어쩌면 샤프 감독은 고개를 끄덕거릴지도.

2008년 6월을 끝으로 브레멘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옌센은 올시즌의 맹활약을 통해 운신의 폭을 넓힌 상황이다. 분명 올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브레멘은 옌센과의 재계약 협상에 적극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Show me the Money!'를 외치며 고자세로 나오고 있는 옌센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올시즌 분데스리가 최고의 인생역전 주인공이다.



2위 - 시몬 롤페스(25, 레버쿠젠 / 독일, 미드필더)

독일 대표팀에서 미카엘 발락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그는 팀의 주장일 뿐만 아니라 전술의 구심점이며 상징이기도 하다. 때문에 독일 언론들은 언제나 새로운 발락을 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올시즌 언론의 레이더망에 잡힌 인재가 있으니 바로 그가 레버쿠젠의 다재다능한 미드필더 시몬 롤페스다.

'미니 발락'으로 불리는 롤페스는 실제로 발락과 많이 닮은 선수다. 수준급 득점력을 비롯한 공수 양면에서 다양한 재주를 갖췄다는 것이 그렇고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안정된 볼 배급 능력과 키핑력을 가졌다는 것도 그렇다. 또한 발락과 같은 189cm의 신장에 공중볼에 장점을 보인다는 것과 레버쿠젠에서 활약한다는 것도 발락과 롤페스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빠뜨리지 않는 단골메뉴다.
지난 2005년 알레만니아 아헨에서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롤페스는 최근 세 시즌간 1부 무대에서 꾸준히 경험을 쌓으며 급격한 기량 향상을 이뤄내고 있다는 평가다. 또한 발락이 부상으로 빠진 시기에 독일 대표팀에서도 꾸준히 중용되며 뢰브 감독의 신임을 쌓았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이상 롤페스는 유로 2008로 향하는 루프트한자에 탑승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부터 전 세계를 주목시키는 요즘의 선수들과는 다르게 발락은 20대 중후반까지 꾸준히 기량을 향상시키며 성공을 이룬 선수다. 아마도 독일 국민들은 롤페스 역시 이러한 발락의 뒤를 따라가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25세 당시의 발락과 현재의 롤페스를 비교해 보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1위 - 스타니슬라프 세스탁(25, 보쿰 / 슬로바키아, 공격수)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빛나는 테오파니스 게카스를 레버쿠젠에 매각한 이후 보쿰의 벤치는 고민에 빠졌다. 지난 시즌 보쿰을 홀로 끌고간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리스 신'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그러나 이 문제는 결과론적으로 슈테판 쿤츠 단장의 유럽 횡단기를 통해 말끔히 해결됐다. 쿤츠는 여름 이적 시장이 다가오자 쓸만한 선수들을 구하기 위해 '고유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몰아 8개 국가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발품의 결실이 바로 올시즌 분데스리가 최고의 '히트 상품' 스타니슬라프 세스탁이다.

슬로바키아 리그의 MSK 칠리나에서 활약했던 세스탁은 지난 시즌 15골을 기록하며 팀을 리그 우승을 이끈 공격수였다. 그러나 사실상 이 공격수가 바깥 세계에 알려진 바는 거의 없었다. 어쩌면 보쿰의 세스탁 영입은 그들이 거액의 이적료를 투자할 수 없는 가난한 구단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K-리그에서도 간간히 볼 수 있는 이적료인 75만 유로(한화 약 10억 원)에 독일땅을 밟은 세스탁은 불과 반 시즌만에 팬들의 보물이자 보쿰의 '연타석 만루홈런'이 됐다.

공격수지만 부지런한 움직임과 뛰어난 축구 지능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는 물론 간간히 플레이메이커의 역할까지도 수행하는 세스탁은 순도 높은 골 결정력과 팀 플레이에 치중하는 비이기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게카스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냈다. 전반기 17경기에 모두 출장한 세스탁은 8골을 뽑아냈을 뿐 아니라 7개의 어시스트까지 곁들이며 리그 공격 포인트 순위에서 디에구(브레멘)에 이은 리그 공동 2위에 랭크돼 있다. 분명 보쿰은 쿤츠 단장이 여름에 쓴 기름값을 세스탁 하나로 모두 만회했음에 틀림없다.

세스탁의 영입이 얼마나 효율적인 선택이었는지 의구심을 품는 이들을 위한 자료. 몸값이 75만 유로였던 세스탁은 자신의 약 10배 몸값이었던 치프리안 마리카(슈투트가르트, 700만 유로)보다 4배나 많은 골을 뽑아냈으며 7.7배 였던 모하메드 지단(함부르크, 580만 유로)와 비교하면 8배나 많이 넣었다. 또한 16배의 몸값이었던 미로슬라프 클로제(바이에른, 1,200만 유로)가 기록한 공격 포인트와 동일한 성적을 냈으며 10배의 몸값이었던 카를로스 알베르투(브레멘, 780만 유로)보다는 무려 33.5배나 더 많은 시간을 뛰었다.

- 사커라인 김태우 -

<‘국내 최고 축구전문 뉴스 & 커뮤니티’ 사커라인(www.soccerline.co.kr) 저작권자 ⓒ 사커라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Posted by 임 군
많은 팬들이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뛰어났던 공격수 둘을 뽑을 때 디디에 드록바(첼시)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선수가 디미타르 베르바토프(토트넘)였다. '근육질의 발레리나'라는 수식어를 지난 베르바토프는 부드러움과 힘, 거기에 스피드를 지닌 만능 공격수다. 지난 06-07 시즌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비롯한 거대 클럽과 연결되었음에도 토트넘에서 행복하며 그러기에 떠날 이유가 없다며 신사의 모습도 보인 베르바토프를 조명해본다.

불가리아 출신의 베르바토프는 구 유고슬라비아와 인접한 도시인 블라고브그라드에서 그 지역에서 프로로 활동한 축구 선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의 이반은 왼쪽 윙플레이어로서 이름을 날렸는데 그 영향으로 어린 베르바토프는 일찌감치 축구와 접할 수 있었다. 베르바토프는 아버지가 선수생활 말년에 뛰었던 지역클럽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17살이 되던 해 그의 자질을 눈여겨 본 불가리아의 전설적 지도자인 디미타르 페네프의 눈에 띠어 자국 내 최고 명문인 CSKA 소피아로 이적하게 된다. 그는 입단 초기부터 세간의 관심을 받았는데 이는 아버지 이반도 CSKA 소피아 출신 선수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 어린 공격수가 두각을 나타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8-1999 시즌부터 경기에 얼굴을 내민 베르바토프는 99-00시즌에 빛을 발했는데, 27경기에 나서 14골을 넣었다. 그러나 성장통이었을까? 잘나가던 베르바토프는 최대 라이벌인 레브스키와 경기에서 여러 차례 결정적 기회를 날렸고 팬들은 어린 공격수에게 큰 실망감을 표시했다. 경기를 주도하고도 이기지 못한 소피아는 결국 우승에 실패했고 실패의 멍에는 베르바토프가 뒤집어 써야했다.

스무 번째 생일에 시작한 레버쿠젠

베르바토프는 이전 시즌의 아픔을 딛고 00-01시즌 11경기에서 9골을 넣으며 다시 한 번 소피아의 간판으로 우뚝 섰다. 거기에 어린 나이에 자국 대표팀에서도 입지를 굳혀가던 이 공격수에게 큰 클럽의 손길이 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베르바토프는 자신의 스무 번째 생일을 앞둔 2001년 1월 바이어 레버쿠젠의 일원으로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시즌 중에 새로운 환경을 맞이한 베르바토프는 적응에 애를 먹으며 골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트레블'보다 더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리플 러너스-업'으로 기억되는 레버쿠젠의 01-02시즌, 베르바토프는 서서히 유럽 무대에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다. 올림피크 리옹과 1차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현란한 개인기를 선보인 후 넣은 골은 베르바토프의 챔피언스리그 첫 골이었고 선수 본인으로도 오래 기억될만한 장면이었다. 또 반전의 반전으로 기억되는 리버풀과 8강 2차전에서도 세번째 골을 집어넣으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그 덕에 레알 마드리드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케르 카시야스의 대선방 앞에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베르바토프는 01/02시즌 자신의 첫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모두 눈앞에서 날려버리긴 했지만 그 시즌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다음시즌부터 백전노장 울프 키어스텐을 밀어내고 레버쿠젠의 엄연한 간판공격수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즌 주전들의 이적과 부상으로 흔들리던 레버쿠젠은 전 시즌에 못 미쳤고 베르바토프도 4골에 그쳤지만 다음시즌부터 완숙한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흠이라면 팀 성적이 뒷받침 되지 못했을 뿐이었다.

03/04시즌부터 05/06시즌까지 3시즌동안 베르바토프는 무섭게 골문을 열어젖혔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리그 경기에서만 57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또 그의 활약은 소속팀에 국한 된 것이 아니었다. 유로 2004 예선에서 5골을 터뜨리며 팀을 본선에 올려놓기도 해 대표팀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선수가 되었다.

잉글랜드에서 이어진 베르바토프의 활약

베르바토프가 맹활약했지만 레버쿠젠은 한 맺힌 01-02시즌 이후 우승권과 거리가 멀었다. 레버쿠젠은 점점 커져가는 간판 공격수의 야망을 채우기에는 부족했고, 재정적인 여건도 좋지 않았다. 선수 본인도 자신의 야망을 숨기지 않았으며 이를 놓치지 않고 2005년 후반부터 발렌시아,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비롯한 유수의 클럽들이 그를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베르바토프는 다소 의외의 결정을 했다. 2006년 여름 불가리아 출신 선수로서 역대 최고액인 1600만유로(109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토트넘의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더 큰 클럽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토트넘을 택한 이유로 베르바토프는 이렇게 말한다.

베르바토프 : "토트넘이 오랜 기간 동안 나를 지켜봤고 젊고 유망한 선수들과 능력 있는 감독(마틴 욜)이 있어 발전가능성이 높은 팀이라고 판단했다"

새로운 옷을 입은 베르바토프는 서서히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셰필드와 홈 개막전에서 골 신고를 한 베르바토프는 유럽 무대와 리그를 통틀어 23골을 기록하며 사뿐하게 잉글랜드 무대에 안착했다. 리그 내 활약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 돋보인 것은 UEFA컵이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베르바토프는 일찌감치 챔피언스리그 결승무대를 밟는 것을 비롯하여 국제 경기 경험이 풍부했다. 이는 그대로 결과로 나타났고 그는 7골을 넣으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유럽 무대 성공에 목말라있던 토트넘 팬들에게 자신들의 팀이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볼 때 소기의 성과였다.

그는 단순히 골을 넣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료들을 도와주는 이타적인 플레이 그리고 체격답지 않은 부드러운 볼터치, 정교한 슈팅능력을 지닌 그에게 프리미어리그 팬들은 열광하였다. 리버풀과 토트넘의 주장을 지냈던 미드필더 제이미 레드넵은 자신이 베르바토프의 열렬한 팬임을 밝히며 "베르바토프의 플레이를 보면 그처럼 프리미어십에 딱 맞는 공격수도 드물다"고 찬사를 보낸다.

자신의 이상형은 앨런 시어러

베르바토프는 어릴 적 네덜란드출신의 명 공격수 마르코 반 바스텐의 플레이에 감동해 AC 밀란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로 96은 자신의 축구관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로부터 2년 전 미국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자국 대표팀이 뉴캐슬의 홈구장 세인트 제임시스 경기장에서 프랑스에게 1-3으로 패하며 조별리그의 아픔을 맛보며 그도 실망했지만 그 대회에서 시어러의 플레이를 본 것은 그에게 엄청난 경험이었다고 전한다(시어러는 이 대회에서 5골을 기록). 또 잉글랜드에서 뛰고 싶다는 열망도 이 때 품었다고 한다. 거기에 시어러가 대회 직후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세우며 고향팀 뉴캐슬로 이적한 것은 베르바토프에게 시어러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3년 뒤 베르바토프는 자신의 우상이 뛰는 팀과 대결할 수 있었는데 99-00시즌 UEFA컵에서 당시 소피아 소속이던 베르바토프는 뉴캐슬과 맞붙게 되었다. 홈에서 0-2로 진 소피아는 뉴캐슬 원정에서 2-2로 비겨 탈락했는데 이 때를 최고의 팬들과 함께한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잉글랜드 무대에 대한 호감은 더욱 높아졌으리라. 2002/03시즌 그의 소속팀은 레버쿠젠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뉴캐슬과 맞붙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그는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하지만 그의 우상은 시어러는 레버쿠젠을 상대로한 두 번째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변함없는 기량을 과시했다.

베르바토프가 자신의 말대로 토트넘에 오래 남는다면 시어러 같은 선수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는 혼자서도 경기를 바꿀 수 있는 역량의 소유자며 팀의 주장인 로비 킨은 최고의 파트너다. 그 외 다른 조건들 역시 베르바토프가 토트넘의 거인으로 우뚝 서기에 모자람이 없다. 지난 시즌의 보여준 모습에 대해 "나는 한 시즌만 잘한 게 아니다"라며 자신감을 보인 그는 보여줄 게 아직 많은 나이다. 앞으로 불가리아 출신 공격수의 전진을 지켜보자.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Dimitar Berbatov)

생년월일 : 1981년 1월 30일
출생지 : 블라고브그리드
키 : 188 cm
소속 클럽 : 토트넘 핫스퍼 (잉글랜드)
포지션 : 중앙 공격수

클럽 경력
~1998 블라고브그라드
1998~2001 CSKA 소피아 (65경기 37득점)
2001~2006 바이어 레버쿠젠 (194경기 90득점)
2006~현재 토트넘 핫스퍼 (53경기 24득점)

대표팀 경력
A매치 59경기 출장 37득점
2004 유로 2004

- 사커라인 배철호 -

<‘국내 최고 축구전문 뉴스 & 커뮤니티’ 사커라인(www.soccerline.co.kr) 저작권자 ⓒ 사커라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Posted by 임 군
지난 시즌 세리에-A 2위팀 AS 로마가 브라질 대표팀 출신의 중앙 수비수 주앙(28, Juan)의 영입을 마무리 지었다. 이에 따라 로마 수비진의 터줏대감인 크리스티안 키부의 이적 가능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 2002년 플라멩고에서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주앙은 이미 지난 시즌 중반부터 사실상 로마로 이적할 것이 확실시 되는 인물이었다. 레버쿠젠 역시 주앙의 이적을 감안하고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루카스 진키비쉬, 아르투르 비달, 마누엘 프리드리히 등 수준급 수비 자원들을 사모은 바 있다. 레버쿠젠의 스포르팅 디렉터 루디 푈러는 이탈리아 진출 시절 자신이 뛰었던 로마에 직접 방문, 로마 구단측과 이적료 협상을 마무리 지었고 이적료는 당초 예상했던 800~1,000만 유로보다는 낮은 630만 유로선으로 알려졌다.

레버쿠젠 입성 당시 팀을 떠날 것으로 예상됐던 루시우(바이에른 뮌헨)의 대체자로 바이 아레나를 밟은 주앙은 첫 시즌 리그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하며 심각한 부진을 겪었으나 그 이후 제 기량을 찾으며 분데스리가 정상급 수비수로 인정받고 있었다. 수비수가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갖춘 선수로 평가되는 주앙은 또한 오른쪽 풀백으로 투입이 가능할 정도로 활발한 공격 가담을 자랑한다. 이미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루시우와 함께 부동의 센터백으로 활약하고 있는 주앙은 분데스리가 139경기에서 10골을 기록하며 정들었던 독일을 떠나게 됐다.

한편 이탈리아 언론에서는 주앙의 영입으로 인해 로마가 키부의 이적을 허가할 것이라는 추측을 내보내고 있다. 이미 세리에-A 정상급 수비수로 인정받고 있는 키부는 인테르 밀란의 관심을 받고 있고 최근에는 푸욜의 부상으로 수비진 정비가 시급한 바르셀로나로부터도 구애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얼마전 멕세와 재계약을 맺은 데 이어 주앙을 영입하며 일단은 키부의 이적에 대비한 보험 가입을 완료한 로마는 다음 시즌까지 팀과 계약이 되어 있는 키부와 연장 계약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이적료 수입을 위해 이적을 허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키부는 로마와 연봉 협상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 사커라인 김태우 -

<국내 최고 축구전문 뉴스 & 커뮤니티’ 사커라인(www.soccerline.co.kr) 저작권자 ⓒ 사커라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Posted by 임 군
다음 시즌 UEFA컵 진출에 대비해 전력을 보강하고 있는 바이어 레버쿠젠이 쾰른의 독일 대표팀 출신 장신 중앙 수비수 루카스 진키비쉬(21, Lukas Sinkiewicz) 영입에 성공했다.

레버쿠젠 수비의 기둥이자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수 중 하나로 평가되는 주앙은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바이 아레나를 떠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주앙은 이미 AS 로마 이적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에 레버쿠젠은 대체 수비 자원을 찾는 데 골몰해 왔다.

이미 칠레의 유망 수비수 아르투로 비달을 520만 유로라는 비교적 큰 액수로 영입한 레버쿠젠은 진키비쉬까지 영입함으로서 젊고 가능성 높은 중앙 수비라인을 보유하게 됐다. 올 시즌 쾰른의 주장으로서 팀의 수비 라인을 이끌었던 진키비쉬는 쾰른이 1부 리그 승격에 실패하자 팀을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레버쿠젠은 진키비쉬의 이적료로 약 160만 유로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는 테오파니스 게카스, 비달에 이어 이번 여름 레버쿠젠의 세 번째 영입 선수로 기록됐다. 비록 시끌벅적한 풍파를 일으킬 정도의 대형 선수는 없으나 레버쿠젠은 착실히 전력을 보강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비달과 진키비쉬가 수비진에서 제 몫을 해줄 경우 레버쿠젠은 젊고 역동적인 팀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미 수비진에도 튀니지 대표팀 출신의 수비수 카림 하구이와 '제 2의 옌스 노보트니'라는 찬사를 받는 얀-잉게르 칼센-브라커가 버티고 있는 레버쿠젠은 시몬 롤페스, 트란퀼로 바르네타, 파울 프라이어, 슈테판 키슬링 등 유능한 젊은 선수들이 스쿼드의 전면으로 등극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 여기에 2008년 여름 합류하기로 결정된 2부 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 파트릭 헬메스까지 가세한다면 이러한 색채는 더욱 뚜렷해질 전망.

한편 레버쿠젠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이미 다섯 선수가 팀을 떠나기로 결정한 상태다. 앞서 언급한 주앙을 비롯, 안드레이 보로닌, 마르코 바비치, 프레데릭 슈텐만, 한스-외르그 부트가 그들. 이미 레버쿠젠 수뇌부는 이러한 선수들의 공백을 메워줄 인재 영입을 공언한 상태라 앞으로의 행보도 주목되고 있다.

- 사커라인 김태우 -
Posted by 임 군
토트넘 핫스퍼의 마틴 욜 감독이 최근 여러 팀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 불가리아 출신 스트라이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26, Dimitar Berbatov)에 대한 판매 의사가 전혀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지난 여름 바이어 레버쿠젠 소속이던 베르바토프에 1,090만 파운드라는 거액의 이적료를 투자한 토트넘은 시즌 중반 이후 완연한 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베르바토프의 활약에 고무된 상태다. 베르바토프는 시즌 초반 잉글랜드 무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듯 보이며 부진하긴 했지만 그가 슬럼프를 탈출하며 화이트 하트 레인의 새로운 영웅으로 자리잡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문전 앞에서의 결정력과 각도에 구애받지 않는 '그림같은' 슛팅은 물론, 볼을 키핑하고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 역시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베르바토프는 프리미어리그 선정 4월의 선수상을 동료 로비 킨과 공동 수상하기도 했으며 어제는 찰튼을 강등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올 시즌 22번째 골을 터트리기도 했다.

올 시즌의 맹활약 때문에 베르바토프는 유럽 명문 클럽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새로운 '9번'을 찾기 위해 이번 여름 이적에 뛰어들 가능성이 농후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베르바토프에 관심이 있는 대표적 인물로 손꼽을 만하다. 그러나 욜은 베르바토프가 토트넘을 떠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이러한 타 클럽의 눈길을 정면 차단하는 모습이다.

욜은 "나는 어제 베르바토프와 대화를 나눴으며 그는 토트넘에서 행복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중들과 서포터스들은 항상 긍정적이며 베르바토프는 "내가 무엇을 더 바래야 합니까?"라고 되물었다"라며 선수 본인 또한 토트넘에서의 생활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욜과 토트넘 구단과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베르바토프는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상당수의 클럽들과 연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토트넘이 팀의 에이스를 어떻게 지켜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 사커라인(www.soccerline.co.kr) -
Posted by 임 군
언제부터, 또 누구로부터 시작됐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우리 언론에서는 독일 대표팀을 지칭할 때 흔히 '전차군단'이라는 애칭을 즐겨쓴다. 물론 독일 현지에서 자국 대표팀을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다. 영어권이나 독어권 국가에서 쓰여지는 기사에도 '전차군단'이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없음도 마찬가지다.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그렇게 관용적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로 이러한 애칭이 쓰였는지도 역시 불분명하지만 아마도 제 2차 대전 당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히틀러 치하 독일의 강력한 기갑 전력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게 비교적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군측에서는 기갑 전력을 보병 지원 중심으로 운용, 전 전선에 걸쳐 넓게 포진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였다. 그러나 독일은 '전격전'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개념을 도입, 선택과 집중을 통해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의 종심을 깊이 돌파하는 전술로 승승장구했다. 구데리안과 만슈타인에 의해 도입되고 정립된 이 전략은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에 의해 실현되며 위용을 떨치게 된다.

이러한 전략을 세운 인물들의 후예여서 그럴까? 생각해보면 독일 대표팀의 전술도 사실 이러한 2차 대전의 전격전 개념과 닮아있다. 아마도 독일 대표팀에 '전차군단'이라는 애칭을 붙인 사람도 이러한 모습에 착안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전성기의 독일 대표팀은 일사분란한 조직력과 화끈한 화력, 선수 전원의 탁월한 체력과 기동력, 일대일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집요한 정면 승부로 무장한 팀이었다. 마치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세대교체에 실패한 이후 수비적인 전술로 '단조롭고 재미없는 축구'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그것이 독일 대표팀의 진면목이 아님은 긴 축구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표팀의 근간을 이루는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독일다운 축구를 하는 팀은 어딜까? 분분한 의견이 있겠지만 필자는 바이어 레버쿠젠을 가장 첫 번째로 연상한다. 특히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 크리스토프 다움과 함께한 그 시절이야 말로 70~80년대 전성기 독일 축구의 스타일과 그 궤를 같이 했다고 주장하고 싶다. 다득점에 대한 매력은 차치하더라도 당시 레버쿠젠은 일사분란한 조직력 속에서 우러나오는 강력한 공격 축구로 시대를 풍미했었다. 그리고 그 절정의 기간은 바로 01/02 시즌,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레버쿠젠의 '트리플 러너업'이 있었던 그 때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인구 25만의 중소도시 레버쿠젠을 근거지로 하는 바이어 레버쿠젠은 '전통의 강호'라는 수식어를 붙이기가 조금은 애매한 클럽이다. 분명 레버쿠젠은 오랜 기간 분데스리가에서 경쟁해 왔으며 바이에른 뮌헨,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함께 'G-14'에 가입되어 있는 독일의 세 클럽 중 하나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클럽임을 입증한다. 그러나 이러한 팀의 오랜 역사와는 다르게 그들의 트로피 보관함에는 이렇다할 보관품이 없다. 그들의 우승 경력은 88년 UEFA컵 우승(차범근이 있던 바로 그 시절이다)과 93년 DFB 포칼 우승이 전부다.

그런데 레버쿠젠은 2002년 그들의 클럽 역사 100년 동안 모은 트로피보다 더 많은 세 개의 우승 트로피를 한꺼번에 쓸어담을 뻔 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레버쿠젠의 성공을 이끈 크리스토프 다움은 '코카인 파동'으로 인해 팀을 떠났고 이에 따라 시즌 시작 전 팀 분위기는 그야말로 착잡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거기에다가 레버쿠젠은 바이에른이나 도르트문트처럼 거물급 선수들을 긁어모을 만한 자금력도 없었기에 선수 보강도 여의치 못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전년도 우승팀 바이에른 뮌헨과 준우승팀 샬케 04, 그리고 막대한 자금을 풀며 영광의 재현에 나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정도를 우승 후보로 꼽았다. 레버쿠젠은 위 세 팀의 대항마로 여겨졌지만 어디까지나 세 팀의 부진할 경우에 한정된 예상이었다.

그러나 98년에 3위, 99년과 2000년에서는 연속 준우승을 차지하며 분데스리가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레버쿠젠의 내공은 전문가들의 상상을 능가했다. 다움이 쌓아놓은 전술적 틀과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 용장 클라우스 토프묄러의 레버쿠젠은 리그 우승에 대해 그 어떤 팀보다도 동기부여가 되어 있었으며 여전히 매력적인 공격 축구를 구사했다. 특히 레버쿠젠은 시즌 초반 벌어졌던 바이에른 뮌헨, 샬케 0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소위 'Big 3'로 평가됐던 팀들과의 대전에서 모두 대등한 경기끝에 무승부를 기록하며 자신들도 강력한 우승 후보임을 과시했다. 결국 레버쿠젠은 13라운드에서 첫 단독 선두에 나섰고, 10승 3무를 기록한 그들은 당시 리그에서 유일하게 패배를 모르는 팀이었다.

이러한 리그에서의 상승세는 자연스럽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이어졌다. 32강 조별 예선에서 바르셀로나, 올림피크 리옹, 페네르바체와 F조에 속한 레버쿠젠은 초반 세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일찌감치 16강 진출 티켓을 확보했고 도합 4승 2패의 성적으로 만만치않은 전력을 과시, 대외컵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전력임을 증명했다.

승리와 추락의 사이

레버쿠젠의 상승세는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야말로 센세이션에 가까운 모습이었다는 것이 당시 상황에 대한 가장 근접한 표현일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힘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여전한 평가 절하에도 불구하고 레버쿠젠은 리그에서 선두권의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쫓는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그리고 샬케의 힘이 레버쿠젠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단 네 경기를 남겨둔 30라운드까지 레버쿠젠은 선두를 질주했고 2위 도르트문트와의 승점차를 4점으로 유지하며 첫 분데스리가 우승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다. 전년도 우승팀 바이에른 뮌헨과의 거리는 무려 9점이었다.

단판 승부라 유난히 이변이 많은 DFB 포칼에서도 레버쿠젠은 순조롭게 항해했다. 2부 리그팀들이 1부의 팀들을 누르는 이변이 자주 발생했던 가운데서도 레버쿠젠은 16강전에서 하노버를, 8강에서 1860 뮌헨을, 4강에서는 쾰른을 차례로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하기에 이른다.

레버쿠젠의 놀라운 기세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더욱 더 빛을 발했다. 32강 조별 예선을 예상보다 쉽게 통과한 레버쿠젠을 기다린 상대는 아스날, 유벤투스, 데포르티보였다.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의 최정상급팀과 한 조를 이루게 된 레버쿠젠의 당시 반응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그러나 토프묄러는 "우리는 잃을 것이 없다"라는 여유로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레버쿠젠의 16강 조별 예선 통과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레버쿠젠의 팬들조차 말이다.

이러한 예상은 레버쿠젠이 유벤투스 원정에서 0:4로 참패하며 적중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레버쿠젠은 데포르티보를 홈으로 불러들여 거둔 3:0 승리를 통해 이를 곧바로 만회하며 겨울 휴식기 전에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레버쿠젠의 분전 덕분에 3라운드까지 네 팀이 모두 1승 1무 1패로 동률이 된 상황에서 8강 진출팀의 행보는 안개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레버쿠젠은 고추가루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유벤투스와 데포르티보와의 마지막 2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유벤투스와 아스날을 탈락이라는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야말로 이변이었다.

레버쿠젠의 8강전 상대는 전통의 강호 리버풀이었다. 레버쿠젠은 앤필드에서 벌어진 1차전에서 전반 종료 직전 허용한 새미 히피아의 선제골을 만회하지 못하고 1:0으로 패배했다. 극적인 승부가 펼쳐졌던 2차전에서도 불안한 상황은 계속됐다. 레버쿠젠은 전반 16분 발락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아벨 사비에르에게 동점골을 허용해 1:1 무승부로 전반을 마쳤다. 후반 중반 발락과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연달아 골을 성공시키며 4강 진출의 꿈을 꾸는 찰나, 종료 10분전 야리 리트마넨에게 추격골을 허용하며 탈락의 위기에 몰리기도 하는 극과 극을 오갔다. 그러나 레버쿠젠은 예전과 다른 침착함을 과시했고 결국 종료 5분전 공격에 깊숙이 가담한 루시우가 강력한 왼발 슛팅을 리버풀의 골문에 꽃아넣으며 극적인 4강 진출을 이루게 된다.

4강전 상대는 또 다른 잉글랜드의 명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어느 팀을 상대로든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레버쿠젠은 이미 다크호스의 수준을 넘어선 어엿한 우승후보로 대접을 받고 있었고 이는 올드 트래포드에서도 확인된다. 레버쿠젠은 숄샤르와 반 니스텔로이(PK)에 연달아 실점하며 패색이 짙었으나 맨체스터의 골문을 그야말로 '육탄'으로 끈질기게 두드렸고 결국 발락과 올리버 뇌빌이 동점을 만들어내며 결승 진출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에 이른다. 2차전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로이 킨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레버쿠젠은 전반 종료 직전 뇌빌의 그림같은 터닝슛이 맨체스터의 골문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며 클럽 역사를 다시쓰게 된다.

이제 레버쿠젠은 전 유럽의 주목을 받는 팀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그들의 기세는 클럽 역사상 첫 '트레블'도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놀라운 성공을 이끌어 낸 토프묄러 감독을 비롯, 발락과 루시우 같은 핵심 선수들은 이미 유럽의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적은 내부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레버쿠젠라는 클럽의 한계이기도 했으며 결과적으로 트레블과 트리플 러너업을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정병주의의 한계

레버쿠젠의 베스트 11은 시즌 내내 일관적이었다. 비록 상대팀에 따라 쓰리백과 포백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토프묄러의 스타일상 전술에 따라 다른 얼굴들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크게 틀려지지는 않았다. 혹자가 '정병주의'라고 표현한 레버쿠젠의 라인업은 기본적으로 루시우와 노보트니를 수비에 두고, 라멜로프와 발락 그리고 바스튀르크를 미드필더에, 공격진에는 베르바토프와 뇌빌, 키어스텐을 로테이션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전술은 매 경기마다 틀렸으나 등장하는 인물은 똑같았다.

레버쿠젠은 중소클럽의 한계상 값비싼 선수들을 벤치에 앉혀놓을만한 여유가 없었다. 유럽에서도 경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그들의 베스트 11과는 달리 벤치는 달리 답이 없어보일 정도였다. 베테랑들인 보리스 지브코비치와 울프 키어스텐이 공격과 수비에서 대체 자원 역할을 해주기는 했지만 그 이상을 벤치에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특히 토프묄러가 다양한 전술을 선보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미드필드는 새로운 얼굴이 전무했다.

이는 주전급 선수들의 '과부하'로 직결됐다. 시즌 종반, 주전 선수들은 이미 40경기 이상을 격렬하게 싸운 상태였고 자연스럽게 체력은 급격하게 떨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많은 선수들이 잔부상을 안고 경기에 임하는 상황이었으며,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레버쿠젠은 임시방편조차도 제시할 수 없었다. 적어도 1-2개의 트로피를 획득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뭉친 스쿼드였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이다. 레버쿠젠의 종반 페이스는 이미 분데스리가를 호령하던 시즌 초중반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나긴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은 경험이 없었고 이는 선수단의 불필요한 긴장을 조장했다.

30라운드까지 당시 그들의 페이스로는 다소 여유까지 있어보였던 4점이라는 우위를 가지고 있었던 레버쿠젠은 31라운드 함부르크와의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한 이후 연이은 두 경기에서 모두 패배했다. 브레멘과 뉘른베르크는 당시 전력으로는 레버쿠젠보다 한 수 아래의 팀으로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었던 팀이기에 충격은 더했다. 레버쿠젠은 이렇게 휘청거리는 동안 도르트문트는 착실히 승점을 쌓으며 레버쿠젠을 1점차로 추월했고, 저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바이에른은 연승 휘파람을 불며 3위 자리에서 레버쿠젠을 1점차로 추격했다.

결정적으로 2002년 4월 30일, 팀의 주장이자 수비 라인의 든든한 보루였던 옌스 노보트니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쓰러지며 레버쿠젠은 위기를 맞는다. 노보트니는 반 니스텔로이와 충돌한 직후 무릎을 움켜잡으며 쓰러졌고 레버쿠젠 팬들에게 돌아온 소식은 주장의 '시즌 아웃'이었다. 노보트니는 수비의 핵심임과 동시에 팀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존재였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팀을 간신히 지탱해 온 하나의 축이 송두리채 뽑혀져나간 레버쿠젠에게 '트리플 러너업'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제시된 것도 이맘때 쯤이다.

운명의 34라운드에서 레버쿠젠은 헤르타 베를린에게 2:1 승리를 거두고 도르트문트의 경기 결과를 기다렸으나, 승기를 잡은 도르트문트는 여세를 몰아 브레멘을 역시 2:1로 누르고 5년만에 분데스리가 황금방패를 탈환했다. 또 다시 2위에 머무르는 순간이었다. 일주일뒤 샬케와 맞붙었던 DFB 포칼에서는 허무하게 수비선이 무너지며 2:4의 참패를 당했다. 그리고 5월 15일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도 지단의 그림같은 발리슛에 무너지며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진통제를 맞아가며 경기에 출전한 발락의 투혼도, 마지막까지 레알의 골문을 두드린 슈나이더의 분전도, 레버쿠젠의 트로피 갈등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트레블보다 더 전례를 찾기 힘들다는 트리플 러너업이었다.

또 다시 기회는 올 것인가?

최근 사커라인이 실시한 "2000년대 가장 기억에 남는 분데스리가 팀은?"이라는 설문 조사에서 01/02 시즌의 레버쿠젠은 34%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나머지 팀들은 모두 적어도 하나씩의 우승 트로피를 가진 팀들이었고 특히 2001년 바이에른은 명실상부한 유럽 챔피언이었다는 점에서 결과는 다소 의아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당시 레버쿠젠의 축구는 전문가들과 팬들을 모두 만족시켜줬다고도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유럽 축구판에서 '다관왕'은 점점 힘들어지는 추세다. 올 시즌만 해도 트레블과 쿼드러블을 노리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가 시즌 종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진 예에서 잘 알수 있다. 많은 명문팀들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며 좋은 선수들을 긁어모음으로서 극상위권의 다툼은 해가 갈수록 더 치열해 지고 있으며, 챔피언스리그 같은 무대의 8강팀들은 어쩌면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유주얼 서스팩트'로 짜여질 가능성마저 보인다. 어쩌면 약자가 강자를 물리침으로서 팬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는 그리스의 유로 2004 우승같이 국가대항전에서 좀 더 자주 제공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자금력 측면에서 '공룡'이 되지 못하는 레버쿠젠이 2002년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당분간은 힘들 것이며 좀 더 부정적으로 본다면 그 시기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도 2002년의 '트리플 러너업'은 레버쿠젠이 분데스리가나 유럽 무대에서 적어도 1-2개의 트로피를 획득할 때까지는 지겹도록 그들을 따라다닐 것이다. 그러나 당시 선수들이 흘린 땀과 정상에 대한 열정까지 간과되서는 곤란하다. 2002년의 레버쿠젠은 분명 오늘날의 클럽들에게, 혹은 미래의 축구 클럽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최근 레버쿠젠은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개편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는 힘들겠지만 2-3년 정도 뒤를 내다보면 괜찮은 행보를 여기저기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들이 바이 아레나에 스며든 클럽의 한을 깨끗히 지워낼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은 붉은 사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진군해야 하는 명확한 지향점을 제공해 줄련지도 모르겠다. 또 한 번의 반란을 꿈꾸며 말이다.

- 사커라인 김태우 -
Posted by 임 군
최근 발목 수술을 받은 첼시의 중앙 미드필더 미카엘 발락(Michael Ballack)이 팀과의 사전 합의 없이 수술을 강행했다는 언론 보도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발락은 지난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경기에서 발목 부위에 부상을 입었고 지난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 결장했다. 발락은 최근 독일 대표팀의 팀 닥터인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의 집도하에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남은 경기 출장은 불투명하다. 역사적인 4관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첼시에게 최근 잉글랜드 무대에 적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팀의 중심 선수로 거듭나고 있는 발락의 공백은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전망.

한편 영국 언론은 발락이 첼시 구단의 허락 없이 독단적으로 수술을 받았다고 전하며 발락과 구단 사이에 냉랭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보도한 바 있다. 언론은 이번 수술이 꼭 필요한 것이었느냐를 조명하는 한편 발락이 올 6월 치뤄지는 독일 대표팀의 유로 2008 예선에 출장하기 위해 이번 수술을 강행했다고 추측하는 상황. 그러나 발락은 독일로 떠나기 전 첼시 의료진의 자문을 받았음을 밝히며 이러한 언론 보도를 모두 부인하는 동시에 시즌 막판 팀 합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음을 피력했다.

발락은 "이번 수술과 6월에 열리는 대표팀 일정을 연관시키는 것은 정말로 우스운 일이다. 절대적으로 넌센스다"라며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또한 발락은 "어떤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FA컵 결승,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마다하겠는가. 나도 이번 수술이 유쾌하지는 않으며 리버풀과의 경기에 뛰고 싶다"라고 덧붙이며 고의적으로 수술 일정을 앞당기지 않았음을 강변했다.

한편 발락은 "여전히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뛸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여주기도 했다.

- 사커라인 김태우 -
Posted by 임 군
오는 주중 UEFA컵 8강 2차전을 앞두고 있는 바이어 레버쿠젠과 베르더 브레멘이 대내외의 악재로 울상짓고 있다는 소식이다.

오사수나와의 홈 1차전에서 충격적인 0:3 패배를 당해 4강 진출이 사실상 어려워진 레버쿠젠은 일요일 벌어진 보쿰과의 리그 경기에서도 1:4 대패를 당해 홈팬들을 실망시켰다. 오사수나의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에 완전히 주도권을 상실하며 패배한 레버쿠젠은 분위기 반전 카드로 손꼽았던 보쿰과의 경기마저도 대패, 다음 시즌 UEFA컵 진출 티켓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2007년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타던 레버쿠젠은 보쿰과의 경기에서 전반에만 3골을 허용하는 극심한 난조를 선보인끝에 승점 쌓기에 실패했다. UEFA컵 티켓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뉘른베르크 역시 이날 브레멘에 패배함으로서 5위 자리는 지켜냈지만 최근 부진한 경기력은 팬들에게 큰 우려를 주기 충분하다. 특히 카스트로, 하구이, 주안, 바비치 등 주전급 포백이 모두 출전한 상황에서도 수비진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사실 빅 클럽들에 비해 스쿼드의 깊이가 현격하게 떨어지는 레버쿠젠은 사실상 베스트 11만으로 2007년을 버텨왔다. 좋은 분위기에서는 별다른 무리가 없었으나 최근의 상황에서는 분위기 반전을 위한 마땅한 카드가 없는 형편. 또한 주전 선수들도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 역력하며 오사수나전의 충격적인 패배 이후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도 지적되고 있다. 더군다나 다음 경기는 우승 레이스로의 복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원정 경기이며 이 경기에 팀의 핵심 베른트 슈나이더(경고 누적)와 주전 스트라이커 슈테판 키슬링(보쿰전 퇴장)도 출전할 수 없어 전망도 어둡다.

브레멘의 경우 후반 조커로 출장한 로젠베리의 결승골에 힘입어 난적 뉘른베르크를 1:0으로 누르고 선두 샬케와의 승점차를 2점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팀의 핵심 수비수 페어 메르테사커가 무릎 부상을 입어 앞으로 약 한 달간 출장이 어려울 것이라는 보도가 들어온 상태.

미로슬라프 클로제를 중심으로 한 공격진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브레멘은 메르테사커와 나우두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 수비진의 분투 덕분에 리그와 UEFA컵에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알크마르와의 UEFA컵 1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기록, 소기의 성과를 기록한 브레멘은 메르테사커를 위시해 부상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4강 진출을 위해서 적게 실점하고 되도록 많이 넣는 경기가 필요한 브레멘으로서는 클로제의 부진과 메르테사커의 부상은 큰 짐이 될 법하다.

브레멘은 보쿰과의 경기를 통해 장기 부상에 시달리던 주장 프랑크 바우만이 복귀했지만 페어 메르테사커, 팀 보로프스키, 다니엘 옌센, 피에르 웨머, 크리스티안 슐츠 등 주전급 선수들이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어 앞으로의 일정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평가다. 다만 '금발의 발락'이라 불릴 정도로 중원에서의 득점력과 장악력이 뛰어난 보로프스키의 조기 복귀가 점쳐지고 있다는 점은 한가닥 위안이 되고 있다.

- 사커라인 김태우 -
Posted by 임 군
유로 2008 예선 일정 관계로 2주만에 재개된 분데스리가 27라운드에서 4위 바이에른 뮌헨이 선두 샬케 04를 잡고 역전 우승에 대한 희망을 이어갔다.

창단 이후 분데스리가 첫 우승을 노리는 샬케를 알리안츠 아레나로 불러들인 바이에른으로서는 역전 우승을 위해 반드시 이 경기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반면 샬케로서는 9점이라는 승점차에도 불구하고 경계 대상이었던 바이에른을 우승 레이스에서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양 팀 모두 동기에 충만한 상태에서 팽팽한 경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지만 결과적으로 바이에른의 절박함이 샬케를 압도했다.

로이 마카이와 루카스 포돌스키 투톱 체제로 중대한 일전에 임한 바이에른은 전반 3분만에 마카이가 오른발로 선제골을 터트리며 기세를 올렸다. 마카이 개인적으로는 올시즌 13호골이자 바이에른의 유니폼을 입은 2003년 이래 공식 경기 100번째 골이었다. 초반부터 터진 골에 힘입어 바이에른은 전반 내내 샬케를 몰아부치며 전년도 챔피언의 위용을 과시했다.

자칫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경기 분위기를 그나마 대등하게 바꿔놓은 것은 샬케의 젊은 수호신 마누엘 노이어였다. 노이어는 마카이의 결정적인 찬스 여럿을 모두 선방해내며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그러나 샬케의 경기력은 스코어를 바꿔놓을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티안 판더가 폭발적인 활약을 선보이며 고군분투했을 뿐, 유난히 전투적으로 경기에 임한 바이에른의 두터운 수비벽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리버 칸이 쇠렌 라르센을 상대로 '레슬링 기술'을 선보이기도 해 과열되는 양상을 보였던 경기는 후반 33분 루시우의 도움을 받은 하산 살리하미지치가 오른발 강슛을 터트리면서 사실상 바이에른으로 승기가 기울었다. 이날 승리로 승점 47점을 기록한 바이에른은 선두 샬케(53점)에 6점차로 따라붙었다. 앞으로 7경기가 남은 시점이기 때문에 승점 6점은 충분히 뒤집기가 가능한 수치. 비록 샬케가 앞으로 묀헨글라드바흐, 마인츠 05, 코트부스, 보쿰 등 비교적 손쉬운 상대들과 대진이 예정되어 있어 여전히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페이스가 후반기 초반만큼 못한 것도 사실이어서 경쟁 구도는 점점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편 2위 베르더 브레멘은 에네르기 코트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 선두 탈환의 기회를 놓쳤다. 브레멘은 주전급 선수들을 모두 투입시키며 승점 3점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냈으나 코트부스의 밀집 수비에 막혀 골을 얻지 못했다. 반면 3위 VfB 슈투트가르트는 아헨을 3:1로 완파하고 승점 3점을 추가했다. 이로서 1위 샬케부터 4위 바이에른까지 나란히 한 계단당 2점씩의 승점차를 기록하게 됐다. 이는 한 경기 결과에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