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생활의 청산, 크리스토프 다움

때는 2000년 가을, 한 축구 감독이 상습적으로 코카인을 복용하는 등 문란한 사생활을 즐겨왔다는(?) 보도가 독일과 유럽 전역으로 타전되며 비상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사실 수 많은 사람들이 음성적으로 마약을 즐기는 유럽에서, 이러한 사건은 한 개인의 패륜행위로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서 있는 이 축구 감독의 비중은 독일과 유럽을 시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아직도 '코카인 파동'으로 회자되는 이 사건의 주인공은, 유로 2000에서의 비참한 성적 이후 경질된 에리히 리벡의 후임으로 독일 대표팀의 감독이 '될뻔했던' 크리스토프 다움이었다.

선수 시절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감독 무대에 도전한 이들도 있고, 현역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지만 일찍이 지도자의 길에 뛰어들어 성공한 이들도 많다. 앞서 언급한 히츠펠트도 그렇지만, 다움도 분류를 하자면 후자의 쪽에 가까울 것이다. 다움의 선수 경력은 자료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일천하다. 1986년 전통의 명문이자, 분데스리가 초대 챔피언이었던 쾰른의 감독을 맡을 당시 그의 경력은 쾰른의 유소년팀 감독과 A팀 어시스턴트 코치 경력, 그리고 체육학 학사가 전부였다. 떨어지는 인지도는 쾰른 팬들의 우려감과 비판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움은 확고한 지도력과 이에 뒤따르는 가시적인 '성적'으로 이러한 목소리를 잠재웠다.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86년부터 4년간 쾰른을 이끌면서 두 번의 준우승, 한 번은 3위를 차지하며 명문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일조했다. 다움이 팀을 맡을 때만 해도 중위권에 머무르던 쾰른의 성적을 생각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요, 당시 챔피언은 당대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던 바이에른이었다. 사실상 쾰른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을 선사한 셈이다.

쾰른에서의 놀라운 지도력을 인정받아 VfB 슈투트가르트로 자리를 옮긴 다움은 92년 짜릿한 역전 레이스로 3수만에 마이스터샬레를 품에 안았다. 그의 성공은 베식타스를 통해 이어졌고, 96년 레버쿠젠에 이르며 집대성된다. 비록 레버쿠젠 시절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화끈한 공격 축구와 기량을 중시하는 선수 등용으로 또 한 번의 센세이션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80년대 후반 UEFA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분데스리가의 신흥 강호로 발돋움했던 레버쿠젠은 90년대 중반에 들어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95/96 시즌에는 겨우 승점 2점차로 강등을 아슬아슬하게 면하면서 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높아져만 갔다. 그러나 다움이 취임하고 난 이후의 레버쿠젠은 달라졌다. 분데스리가의 감독 중에서도 낙천주의자로 이름이 높은 다움은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이름값이 높은 선수라도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 과감히 배제시키는 '충격요법'을 통해 팀을 재정비했다. 이와는 반대로, 젊거나 인지도가 높지 않은 선수라도 실력과 자신의 전술에 부합하면 과감히 등용했다. 국제 레벨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20대 초반의 옌스 노보트니에게 과감히 팀의 주장을 맡긴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했다. 이 결과, 95/96 시즌 승점 38점을 따는 데 그쳤던 레버쿠젠은 다움이 부임한 첫 시즌인 96/97 시즌에는 배에 이르는 69점을 획득하며 2위에 오른다.

이러한 다움의 '마법'은 계속 효력을 발휘했다. 98년 3위, 99년과 2000년에는 연속 2위를 차지했다. 특히 2000년은 레버쿠젠과 다움에게 많은 아쉬움을 선사한 시즌이었다. 레버쿠젠은 최종 라운드가 시작되기 전까지 2위 바이에른 뮌헨에 승점 3점을 앞서, 사실상 첫 우승의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레버쿠젠의 최종전 상대는 중위권팀 운터하잉. 레버쿠젠은 운터하잉 원정에서 비기기만 해도 클럽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었지만, 전반 20분에 터진 미카엘 발락의 자책골과 후반 추가골을 허용하며 0:2로 패배, 분루를 삼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화끈해지는 다움의 공격 스타일은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팀원의 공격 재능을 극대화시키며, 선이 굵은 축구와 아기자기한 축구를 혼용하여 상대의 수비를 무너뜨리는 모습은 전성기의 독일 대표팀을 연상시켰다. 그렇게 다움은 승승장구하는 듯 했다.

리벡과 독일 대표팀의 좌초 이후, 다움은 별다른 이견없이 대표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낙점됐다. 그만큼 그가 분데스리가에서, 특히 레버쿠젠을 통해 팬들에게 보여준 임팩트 자체는 거대했다. 특히 선수의 능력을 보는 안목에서 탁월함과 차별성을 인정 받았던 다움이었기에, 계속되는 세대 교체 실패로 만신창이가 된 대표팀의 재건에 적임자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00/01 시즌까지 소속팀과 계약이 되어 있었던 그는, 레버쿠젠과의 계약을 모두 채운 뒤 나치오날엘프의 수장으로의 등극이 예정된다. 그러나 2000년 10월에 터진 '그때 그사건'은 다움의 모든 것을 앗아가버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의 제네럴 매니저로, 독일 대표팀의 '원로'이기도 한 울리 회네스는 다움의 상습적인 코카인 복용을 폭로했으며 몇몇 클럽의 원로들이 이에 동조하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이에 다움은 즉각 반박하며 도핑테스트를 위해 머리카락까지 직접 제출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맞섰으나 돌아온 검사 결과는 '양성'이라는, 그에게는 치명적인 선고였다. 독일 검찰이 사건에 직접 뛰어듬은 물론, 독일축구협회에서도 진상규명위원회를 자체적으로 조직할 정도로 파장이 컸던 이 사건에서, 다움은 독일 대표팀 감독과 레버쿠젠의 감독직을 모두 잃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인' 생활은 시작되었다.

우리 나라야 마약에 중독되어 자제심을 상실하거나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다움에게 특별한 형사 처벌은 가해지지 않았다. 그는 구치소에 가지도 않았고, 감독 자격을 상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독일 무대를 떠나야했다는 것은, 이 동독 출신의 감독에게는 구속 수감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떤 분데스리가 클럽들도 도덕성을 상실했던 다움에게 팀의 감독직을 제의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다움은 유배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베식타스, 오스트리아 빈, 페네르바체를 떠돌게 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움의 능력은 유배 중에서도 빛을 발했다. 특히 페네르바체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간 것은 그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다움의 지도 기간 중, 페네르바체는 챔피언스리그의 단골손님으로 자리잡았을 뿐만 아니라, 갈라타사라이나 베식타스 같은 '이스탄불 친구들'에게 우위를 점했다. 다움의 독일 복귀설이 슬슬 고개를 든 것은 이 시기였다. 샬케 0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심지어는 그를 내친 바이어 레버쿠젠 등 분데스리가의 상위권 팀들이 감독 교체의 시점에서 그의 이름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다움의 보결로 유로 2004까지 대표팀을 이끌었던 루디 푈러가 물러나자 다움은 오트마 히츠펠트와 함께 가장 유력한 차기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코카인 파동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던 다움은 독일로의 복귀를 가족 문제 등을 들어 번번히 고사한다.

하지만 기회, 혹은 독일 복귀의 계기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온다. 신병 치료차 쾰른을 방문했던 다움은 당시 부진한 성적으로 질타를 받고 있었던 친정팀 쾰른의 구애를 받게된 것이다. 지난 시즌 1부 리그에서 강등, 2부 리그에서 재승격을 노리고 있었던 이 분데스리가 초대 챔피언은 시즌 초반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라투어 감독을 경질했던 차였다. 홀거 게어케 감독 대행으로 유지되고 있던 팀 앞에, 다움이 나타난 것이다. 쾰른 팬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구세주의 등장이었다. 당초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빅 클럽을 고려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상상 이상의 구애에 난색을 표현했던 다움은, 결국 2010년 6월까지의 장기 계약을 골자로 2006년 11월 27일 쾰른의 사령탑에 취임한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유배 생활의 종결이었다.

- 사커라인 김태우 -
Posted by 임 군

BLOG main image
유럽 축구와 메이저 리그를 즐기는 공간입니다. +_+ by 임 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2770)
축구 (1699)
야구 (454)
야구/축구 외 스포츠 관련 (120)
음악 (5)
기타 동영상 (300)
기타 글 (172)
잡설 (17)
Total : 662,161
Today : 429 Yesterday : 801
Statistics Graph
네이버에 북마크 다음에 북마크 마가린 바르기 HanRSS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News2.0에 투고하기 del.icio.us에 북마크하기 Digg에 번역해 투고하기 dzone에 번역해 투고하기 붐바
Add to Google 블로그얌::블로그가치평가
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