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23 - [축구/선수 동영상] - 세바스티안 다이슬러
2007/06/09 - [축구/기사 혹은 칼럼] - 묀헨글라드바흐, 비운의 스타 리켄에 러브콜
2007/10/03 - [축구/기사 혹은 칼럼] - [OPINION] 굴곡의 10년, 희망의 지금
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프로 리그가 팬들의 성원과 사랑을 먹고 산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이러한 팬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소위 '스타 선수'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모습을 보기 위해 아낌 없이 티켓 값을 지불하고, 이러한 추세에서 스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마케팅 기법의 발달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스타 선수들은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 탄생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능력을 인정 받아 '벼락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고, 꾸준히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키는 인고의 시간 끝에 별들의 대열에 오르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또한 한 팀을 위해 오랜 기간 헌신함으로써 팬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선수가 다시 예전과 같은 사랑을 받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그 빈도도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올시즌 K-리그의 '돌아온 앙팡테리블' 고종수(대전 시티즌)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 낮은 일을 목도하며 환호했다. 특히 후반기 막판 연승을 거듭하며 가능성이 낮아 보였던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대전의 감격 스토리는 플레이오프 제도의 흥행에 크게 일조했고, 이 중심에 있었던 김호 감독과 고종수는 다시 한 번 자신들이 리그 전체에 파급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스타적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켰다.
비록 시즌을 절반도 채 소화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자신이 전성기 기량을 모두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고종수의 복귀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물론 그의 완벽한 부활 여부를 판단하기는 조금 이른 시점이지만 이는 스타 갈증에 시달렸던 K-리그의 청량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후배 선수들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의미를 가진다.
한 때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을 정도의 역경을 딛고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선 고종수를 보면서, 필자는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았고 또 살고 있는 독일의 두 걸출한 재능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90년대 중반 전 독일을 흥분시켰던 라스 리켄과 '세기의 재능'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기대를 모았던 세바스티안 다이슬러가 그들이다.
불운한 천재, 리켄과 다이슬러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통해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른 독일은 잉글랜드에서 열린 96년 유럽선수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 번 저력을 과시한다. 특히 유로 96의 경우 좋은 팀이기는 하지만 우승까지는 힘들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터라 독일의 기쁨은 두 배였다. 그러나 라이벌의 심장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우승 트로피를 받는 그 순간에도 독일 축구계는 암흑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유로 96 우승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중반을 호령한 베테랑 스타들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일사분란했고 큰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긴 노장들로 대표팀의 미래까지는 보장해 주지 못했다. 게다가 대표팀의 근간이 되어야 할 독일 분데스리가는 좋은 기량을 가졌으면서도 가격 측면에서 매력이 있었던 남미나 아프리카계 용병들이 자국 유망주들의 자리를 잠식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뛰어난 기량을 가진 젊은 피의 수혈 없이 나섰던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독일은 세계 정상들과의 전력차를 실감하며 8강에 머물렀다. 2-3년 전부터 "이대로 가다간 대표팀이 노인정이 될 것"이라 경고한 자국 언론들의 쓴소리를 앙리들로네컵을 흔들며 애써 무시했던 독일 대표팀이 제대로 된 철퇴를 맞은 셈이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독일 대표팀은 개혁은 세대교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됐고 리그에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들의 발굴과 육성에 열을 올리게 된다.
10년 이상 이어진 이와 같은 자구 노력과 지원, 그리고 팬들과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미카엘 발락, 토어스텐 프링스, 크리스토프 메철더와 같은 선수들은 현재의 독일 대표팀을 이끌고 있으며 완전히 정착된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은 지속적으로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로 접어들 때까지만 해도 가장 큰 주목과 관심을 받은 선수들이 바로 리켄과 다이슬러다. 장기적으로 선수를 키울 만한 여유가 없었던 독일은 이미 완성된 재능이었던 두 선수의 출현에 주목하고 또 환호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소속이었던 리켄은 이미 96/97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터트린 환상적인 중거리슛으로 인해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안드레아스 묄러와 같은 걸출한 플레이메이커가 있었던 도르트문트에서 리켄은 확고부동한 주전의 역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뮌헨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터트린 멋진 쐐기골은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기 충분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도르트문트는 유망주들의 집합소로 불리며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고 기량과 상품 가치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리켄은 그 선두주자였다.
다이슬러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유스 레벨을 두루 거치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유망 선수였던 다이슬러는 프로 데뷔부터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안드레아스 묄러와 같은 창조적 미드필더와 토마스 해슬러 같은 역동적인 공격적 미드필더에 목말라 있었던 독일 축구계에 마치 이 두 선수의 장점만을 절묘하게 합쳐놓은 것 같았던 다이슬러의 등장은 그야말로 '축복' 그 자체였다.
그러나 각각 "앞으로 10년 간 독일 대표팀을 이끌 인재"라고 호평 받았던 두 선수의 앞길은 지뢰밭이었다. 리켄의 경우 너무나도 다재다능한 그의 재능이 가능성의 만개를 막은 경우다. 그는 팀의 필요에 따라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윙 포워드, 심지어는 전방 공격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사용되어 한 가지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 그는 얀 콜러, 에웨르톤 등과 함께 도르트문트 공격진의 삼각편대를 이끌며 2002년 우승의 주역 중 하나로 거듭나기도 했으나 부상과 그에 따른 슬럼프가 겹치면서 더 이상의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다이슬러는 잦은 부상과 언론의 압박이 발목을 잡았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오스트리아와 마지막 평가전을 가진 다이슬러는 수비수와의 충돌 과정에서 무릎 십자 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으로 첫 월드컵 출전을 접었고 그 후 끊임없이 반복된 무릎 수술과의 투쟁으로 인해 그라운드에 나서는 시간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자국 국민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 그리고 언론의 지나친 간섭은 다이슬러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제공했으며 그는 이로 인해 극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결국 다이슬러는 지난 1월 "계속된 수술로 인해 내 무릎에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라며 27살이라는 나이에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그는 부상에서 회복해 다시 한 번 재기를 노리고 있었던 시점이라 그 충격은 더 컸고, 10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인재라던 다이슬러는 그렇게 축구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또한 다이슬러의 은퇴는 한 명의 특출난 선수가 자신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독일 대표팀의 패러다임에 종지부를 찍으며 대표팀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는 분수령이 되기도 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리켄과 다이슬러는 그렇게 우리의 눈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스타의 자리를 반납하고 평범한 선수 혹은 일반인으로 돌아간 두 인물의 차후 행보는 대조적이다. 다이슬러가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은 반면, 리켄은 도르트문트에 남아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기량적 측면에서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 리켄이 분데스리가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토마스 돌 감독의 구상에서 제외된 그는 3부 리그 소속의 구단 아마추어 팀에서 뛰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팀의 리그 우승방패 탈환에 기여하기도 했으며 또한 클럽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으로 여전히 도르트문트팬들에게 영웅과도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리켄이 자존심 상하게 3부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분데스리가의 타 클럽으로 이적할 수도 있었고 도르트문트에 인생을 바친 자신의 공헌을 인정 받아 얻은 구단 마케팅 관리직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31세의 리켄은 구단 프런트로의 합류가 결정된 이후에도 3부 리그 선수라는 방법으로 현역에 남았다. 그리고 자신보다 10살 이상 어린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호흡하며 나름대로의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리켄은 "팀의 미래인 어린 선수들에게 내가 가진 경험을 조금이라도 나눠줄 수 있다면 현재의 위상에 만족할 것"이라며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9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 준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알콜 중독자와 창녀라는 두 비극적 캐릭터의 교차를 통해 삶에 대한 영화의 생각을 조용히 읖조린다. 결과적으로 알콜 중독자 벤은 죽음을 통해 라스베가스를 떠나지만, 벤의 상처를 보듬었던 세라는 자신이 처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계속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감독은 앞으로 세라가 살아갈 인생에 대해서는 관객들의 상상력에 위임하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리켄과 다이슬러도 돈과 명예를 위해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분데스리가라는 라스베가스를 다른 방식으로 떠났다. 다이슬러는 미련 없이 그 복잡한 세계를 탈출했고, 리켄은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을 선택했다. 물론 두 선수의 선택에 있어 필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이는 리켄과 다이슬러라는 인물들이 각자 내린 '가치 판단'으로 존중되어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이나 20년이 지난 먼 훗날에, 한때의 과거를 풍미했던 두 선수에 대한 평가는 어떤 식으로 내려질까? 과연 어느 것이 자신을 사랑했던 팬들을 위한 좀 더 옳은 선택이며, 또한 자신의 후회 없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 선택이었을까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이 문제의 답을 녹색 그라운드와 함께 호흡하며 해맑게 웃고 있는 고종수의 모습과 여전히 그에게 환호하는 팬들의 모습에서 미리 알 수 있을련지도 모르겠다.
- 사커라인 김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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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9 - [축구/기사 혹은 칼럼] - 묀헨글라드바흐, 비운의 스타 리켄에 러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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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스타 선수들은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 탄생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능력을 인정 받아 '벼락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고, 꾸준히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키는 인고의 시간 끝에 별들의 대열에 오르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또한 한 팀을 위해 오랜 기간 헌신함으로써 팬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선수가 다시 예전과 같은 사랑을 받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그 빈도도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올시즌 K-리그의 '돌아온 앙팡테리블' 고종수(대전 시티즌)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 낮은 일을 목도하며 환호했다. 특히 후반기 막판 연승을 거듭하며 가능성이 낮아 보였던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대전의 감격 스토리는 플레이오프 제도의 흥행에 크게 일조했고, 이 중심에 있었던 김호 감독과 고종수는 다시 한 번 자신들이 리그 전체에 파급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스타적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켰다.
비록 시즌을 절반도 채 소화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자신이 전성기 기량을 모두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고종수의 복귀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물론 그의 완벽한 부활 여부를 판단하기는 조금 이른 시점이지만 이는 스타 갈증에 시달렸던 K-리그의 청량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후배 선수들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의미를 가진다.
한 때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을 정도의 역경을 딛고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선 고종수를 보면서, 필자는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았고 또 살고 있는 독일의 두 걸출한 재능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90년대 중반 전 독일을 흥분시켰던 라스 리켄과 '세기의 재능'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기대를 모았던 세바스티안 다이슬러가 그들이다.
불운한 천재, 리켄과 다이슬러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통해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른 독일은 잉글랜드에서 열린 96년 유럽선수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 번 저력을 과시한다. 특히 유로 96의 경우 좋은 팀이기는 하지만 우승까지는 힘들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터라 독일의 기쁨은 두 배였다. 그러나 라이벌의 심장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우승 트로피를 받는 그 순간에도 독일 축구계는 암흑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유로 96 우승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중반을 호령한 베테랑 스타들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일사분란했고 큰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긴 노장들로 대표팀의 미래까지는 보장해 주지 못했다. 게다가 대표팀의 근간이 되어야 할 독일 분데스리가는 좋은 기량을 가졌으면서도 가격 측면에서 매력이 있었던 남미나 아프리카계 용병들이 자국 유망주들의 자리를 잠식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뛰어난 기량을 가진 젊은 피의 수혈 없이 나섰던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독일은 세계 정상들과의 전력차를 실감하며 8강에 머물렀다. 2-3년 전부터 "이대로 가다간 대표팀이 노인정이 될 것"이라 경고한 자국 언론들의 쓴소리를 앙리들로네컵을 흔들며 애써 무시했던 독일 대표팀이 제대로 된 철퇴를 맞은 셈이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독일 대표팀은 개혁은 세대교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됐고 리그에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들의 발굴과 육성에 열을 올리게 된다.
10년 이상 이어진 이와 같은 자구 노력과 지원, 그리고 팬들과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미카엘 발락, 토어스텐 프링스, 크리스토프 메철더와 같은 선수들은 현재의 독일 대표팀을 이끌고 있으며 완전히 정착된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은 지속적으로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로 접어들 때까지만 해도 가장 큰 주목과 관심을 받은 선수들이 바로 리켄과 다이슬러다. 장기적으로 선수를 키울 만한 여유가 없었던 독일은 이미 완성된 재능이었던 두 선수의 출현에 주목하고 또 환호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소속이었던 리켄은 이미 96/97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터트린 환상적인 중거리슛으로 인해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안드레아스 묄러와 같은 걸출한 플레이메이커가 있었던 도르트문트에서 리켄은 확고부동한 주전의 역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뮌헨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터트린 멋진 쐐기골은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기 충분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도르트문트는 유망주들의 집합소로 불리며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고 기량과 상품 가치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리켄은 그 선두주자였다.
다이슬러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유스 레벨을 두루 거치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유망 선수였던 다이슬러는 프로 데뷔부터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안드레아스 묄러와 같은 창조적 미드필더와 토마스 해슬러 같은 역동적인 공격적 미드필더에 목말라 있었던 독일 축구계에 마치 이 두 선수의 장점만을 절묘하게 합쳐놓은 것 같았던 다이슬러의 등장은 그야말로 '축복' 그 자체였다.
그러나 각각 "앞으로 10년 간 독일 대표팀을 이끌 인재"라고 호평 받았던 두 선수의 앞길은 지뢰밭이었다. 리켄의 경우 너무나도 다재다능한 그의 재능이 가능성의 만개를 막은 경우다. 그는 팀의 필요에 따라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윙 포워드, 심지어는 전방 공격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사용되어 한 가지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 그는 얀 콜러, 에웨르톤 등과 함께 도르트문트 공격진의 삼각편대를 이끌며 2002년 우승의 주역 중 하나로 거듭나기도 했으나 부상과 그에 따른 슬럼프가 겹치면서 더 이상의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다이슬러는 잦은 부상과 언론의 압박이 발목을 잡았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오스트리아와 마지막 평가전을 가진 다이슬러는 수비수와의 충돌 과정에서 무릎 십자 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으로 첫 월드컵 출전을 접었고 그 후 끊임없이 반복된 무릎 수술과의 투쟁으로 인해 그라운드에 나서는 시간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자국 국민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 그리고 언론의 지나친 간섭은 다이슬러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제공했으며 그는 이로 인해 극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결국 다이슬러는 지난 1월 "계속된 수술로 인해 내 무릎에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라며 27살이라는 나이에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그는 부상에서 회복해 다시 한 번 재기를 노리고 있었던 시점이라 그 충격은 더 컸고, 10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인재라던 다이슬러는 그렇게 축구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또한 다이슬러의 은퇴는 한 명의 특출난 선수가 자신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독일 대표팀의 패러다임에 종지부를 찍으며 대표팀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는 분수령이 되기도 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리켄과 다이슬러는 그렇게 우리의 눈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스타의 자리를 반납하고 평범한 선수 혹은 일반인으로 돌아간 두 인물의 차후 행보는 대조적이다. 다이슬러가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은 반면, 리켄은 도르트문트에 남아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기량적 측면에서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 리켄이 분데스리가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토마스 돌 감독의 구상에서 제외된 그는 3부 리그 소속의 구단 아마추어 팀에서 뛰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팀의 리그 우승방패 탈환에 기여하기도 했으며 또한 클럽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으로 여전히 도르트문트팬들에게 영웅과도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리켄이 자존심 상하게 3부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분데스리가의 타 클럽으로 이적할 수도 있었고 도르트문트에 인생을 바친 자신의 공헌을 인정 받아 얻은 구단 마케팅 관리직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31세의 리켄은 구단 프런트로의 합류가 결정된 이후에도 3부 리그 선수라는 방법으로 현역에 남았다. 그리고 자신보다 10살 이상 어린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호흡하며 나름대로의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리켄은 "팀의 미래인 어린 선수들에게 내가 가진 경험을 조금이라도 나눠줄 수 있다면 현재의 위상에 만족할 것"이라며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9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 준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알콜 중독자와 창녀라는 두 비극적 캐릭터의 교차를 통해 삶에 대한 영화의 생각을 조용히 읖조린다. 결과적으로 알콜 중독자 벤은 죽음을 통해 라스베가스를 떠나지만, 벤의 상처를 보듬었던 세라는 자신이 처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계속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감독은 앞으로 세라가 살아갈 인생에 대해서는 관객들의 상상력에 위임하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리켄과 다이슬러도 돈과 명예를 위해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분데스리가라는 라스베가스를 다른 방식으로 떠났다. 다이슬러는 미련 없이 그 복잡한 세계를 탈출했고, 리켄은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을 선택했다. 물론 두 선수의 선택에 있어 필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이는 리켄과 다이슬러라는 인물들이 각자 내린 '가치 판단'으로 존중되어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이나 20년이 지난 먼 훗날에, 한때의 과거를 풍미했던 두 선수에 대한 평가는 어떤 식으로 내려질까? 과연 어느 것이 자신을 사랑했던 팬들을 위한 좀 더 옳은 선택이며, 또한 자신의 후회 없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 선택이었을까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이 문제의 답을 녹색 그라운드와 함께 호흡하며 해맑게 웃고 있는 고종수의 모습과 여전히 그에게 환호하는 팬들의 모습에서 미리 알 수 있을련지도 모르겠다.
- 사커라인 김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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