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에서 남미 출신 선수들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2002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며 떠오른 클레베르손, 아르헨티나의 수퍼스타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의 경우 프리미어리그에서 남미 출신 선수들이 적응하기 어렵다는 근거로써 아직까지 축구팬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와 카를로스 테베스가 처음 잉글랜드 무대를 밟을 때 역시 이런 이유로 인해 적잖은 우려가 있었다.

비록 리버풀로 이적하면서 제 기량을 찾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이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강등 위기에서 구해낸 선봉장 카를로스 테베스였지만 그들 역시 초반부터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잉글랜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면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안데르손, 아스날의 데닐손, 리버풀의 루카스 등 브라질의 유망한 선수들은 지속적으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남미 출신임에도 위에 언급된 선수들과 달리 이적 초반부터 팀의 중심 선수로 자리잡고 에이스라 칭할 만한 선수가 있다. 바로 맨체스터 시티의 엘라누 블루메르다. 최근 맨체스터 시티는 정말 흥미로운 장면들을 자주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들은 대부분 엘라누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된다. 동료들이 어디에 있든 찾아내고마는 폭넓은 시야, 승부를 결정짓는 날카로운 프리킥과 슈팅, 도무지 타이밍을 예측하기 힘든 패스 등 그의 이타적인 플레이는 다소 이기적인 성향이 짙은 브라질 출신 공격수들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엘라누의 독특한 매력이자 강력한 무기다. 그리고 엘라누의 바로 이런 점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초반부터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는 데 성공한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엘라누는 본격적으로 브라질 대표팀에 선발되기 전까지 언론과 팬들로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라누는 자신이 빛나기 보다는 남을 빛내주는 남다른 재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호비뉴, 디에고와 함께 산토스를 남미 정상에 올려놓은 주축 멤버였던 그였지만 언제나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는 화려한 개인기로 무장하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호비뉴, 데코의 후계자로 FC포르투에 입성한 플레이메이커 디에고에 집중됐고 엘라누는 그들과는 달리 소리 소문없이 조용히 우크라이나로 새둥지를 틀었다.

축구자원의 보고 브라질에서 우크라이나 리그 출신 선수들에겐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지만 브라질 대표팀 사령탑에 앉게 된 카를로스 둥가는 산토스 시절부터 지켜봐 온 그의 재능을 누구보다 높게 평가했고 결국 엘라누는 우크라이나 리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을 입어보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여기에 보답이라도 하듯 잉글랜드에서 펼쳐진 아르헨티나와의 친선 경기에 나선 엘라누는 혼자서 두 골을 뽑아내며 맨오브더매치에 선정되고 둥가의 황태자로 떠오르며 꾸준하게 브라질 대표팀 스쿼드에 이름을 올린다.

특히 엘라누를 좀 더 높이 평가하고 싶은 이유는 팀 구성원과 전술에 따라 다양한 변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실제 산토스와 브라질에서의 엘라누, 샤크타르 도네츠크에서의 엘라누와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엘라누는 그 역할과 팀내 비중에 있어서 조금씩 다르다.

샤크타르 도네츠크에서 엘라누는 윙포워드나 쉐도우 스트라이커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히카르지뉴, 마투잘렘은 엘라누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선수들이었고 그의 재능을 뿜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던 파트너틀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기후와 음식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엘라누는 해를 거듭할수록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졌다.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생활하던 세 시즌간 50경기를 채 뛰지 못한 그는 끝내 샤크타르 도네츠크에서의 마지막 시즌엔 사실상 슈퍼서브 역할에만 머물러야 했다. 그래도 언제나 경기에 나서기만 하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냈던 그였기에 에릭손은 800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엘라누를 영입했을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산토스와 브라질에서는 좀 더 수비적인 역할이 요구되면서 어느 정도 공격적인 재능을 희생시킬 수 밖에 없었다. 산토스에선 디에고와 파트너로, 대표팀에선 카카나 다니엘 카르발료, 줄리우 밥티스타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보조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수비형 미드필더의 수비부담을 덜어주는 임무를 맡아왔다. 하지만 호나우지뉴를 밀어내고 주전을 꿰찬 엘라누에 대한 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브라질 팬들은 엘라누의 희생보다는 호나우지뉴의 마법을 더욱 기대했고 둥가 또한 이러한 분위기를 외면할 순 없는지라 다시 벤치로 밀리고 만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에서 엘라누는 자신의 기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역할과 기회가 주어지면서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떠오르며 어느덧 둥가의 황태자라기 보단 에릭손의 황태자라는 말이 더욱 어울리게 됐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디트마르 하만과 마이클 존슨이 견고하게 자신을 뒤에서 받쳐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르틴 페트로프라는 폭발적인 측면 공격수의 존재로 인해 산토스, 샤크타르 도네츠크, 브라질에선 측면공격 혹은 수비까지 도맡았던 엘라누가 중앙에서의 게임메이킹과 쉐도우 스트라이커적인 역할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현재 3골 5어시스트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대변되고 있다. 한 송이의 장미꽃이 아름답기 위해 그 주변에는 수많은 안개꽃이 있다고 했던가. 자신이 가진 재능을 숨기고 지금까지 작고 볼품없는 안개꽃에만 만족해야 했던 엘라누. 이제 그는 축구종가 잉글랜드에 와서야 비로소 장미를 돋보이게 하는 안개꽃이 아닌 수많은 장미들 사이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한 송이의 카나리아로 피어나기 시작한 것 같다.


- 사커라인 이창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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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임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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